『독』 햇살을 머금고 익어가는 삶

“장독처럼, 햇살과 바람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길.”

by 오석표

집 뒤 양지바른 언덕,
항상 햇살이 먼저 닿던 곳—
그 자리에 장독대가 있었다.


크고 작은 독들이 줄지어 놓이고,
그 안엔 된장, 간장, 고추장이 담겨 있었다.
뚜껑 위엔 햇빛이 내려앉고,
시원한 바람이 틈틈이 다녀갔다.


장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천천히, 깊게 익어간다.
햇살에 살균되고,
바람에 숨 쉬며,
시간에 숙성되는 맛.


그 곁에는 빨래줄이 있었다.
바람에 나부끼던 흰 옷들,
그 사이를 날아다니던 고추잠자리,
그리고 어머니의 웃음소리.


나는 그곳에서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배웠다.
급하게 끓이지 않고,
천천히 스며들어야 진짜 맛이 난다는 것.


장을 담그는 독은
속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어느 날 뚜껑을 열었을 때
향기로 드러난다.


사람도 그렇다.
속은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 특유의 ‘맛’이 난다.


우리네 인생도
장독처럼 익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햇빛을 받아들이고,
바람을 견디며,
쓸모없는 독소는 날려보내고,
오롯이 내 삶의 깊이를 만들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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