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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디어 따끈따끈한 책을 만졌다.

<오사카총영사의 1000일>

by 오태규

오사카총영사를 마치고 6월 2일 귀국했다. 어느덧 6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코로나와 더위, 이사 등 국내 정착 일로 정신 없는 생활을 보냈다. 때문에 귀국 뒤 신세를 졌던 여러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인사도 못했다.


이런 와중에 책 출판으로 귀국 인사를 대신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에서 낸 <총영사 일기>의 한글판 출판 준비를 가열차게 했다. 내 욕심으로는 원고도 준비가 돼 있으니 10월까지는 출판이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출판이라는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란 걸 알았다. 출판사가 이미 계획하고 있는 일정도 있고, 원고 외에 교열, 디자인, 인쇄, 제본 등 여러 가지 공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출판사 쪽에 가급적 빨리 책을 내달라고 재촉했다. 이런 필자의 막무가내를 받아들여 출판사 쪽이 11월 말일에 책을 손에 쥐게 해주었다. 책 구경을 하려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로 달려갔다. 손에 만져진 책은 인쇄의 온기가 남아 있어서인지 따끈따끈하게 느껴졌다.

발랄한 표지여서 너무 가벼운 인상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페이지 수가 500페이지 가까이(496페이지) 되어 중량감이 있었다. '이게 내가 낳은 자식인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걱정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자축하고 싶다.


다음은 한글판 <오사카총영사의 1000일> '들어가는 말'이다.


이 책은, 내가 오사카총영사로 재직 중이던 2020년 10월 말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일본어판 <총영사 일기>의 증보판이라 할 수 있다.


일본어판은 ‘현직 총영사가 현지에서 현지어로 된 책을 출판’하는 것이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가피하게 2020년 7월 말까지로 끊어 글을 마감했다. 그러나 나의 임기는 글 마감 시점으로부터 약 10개월, 책이 나온 뒤로부터는 거의 7개월이나 더 이어졌다. 물론 책 출판 이후에도 임기 말까지 꾸준히 글을 썼다. 한글판 책은 일본어판 책 출판 이후에 쓴 글을 모두 담았다. 따라서 한글판이야말로 총영사 임기 시작부터 끝까지 활동을 모두 담은 ‘총영사 일기’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에서 책이 출판된 뒤, 현지 동포사회 및 일본 각계에서 내가 당황스러워할 정도로 많은 호의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현지의 주요 매체들 대부분이 주요하게 기사로 다뤄주었다. 동포와 일본인 지인, 학자들도 코로나 감염 사태에도 불구하고 책 내용을 매개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었다. 이를 통해 동포 및 일본 사회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가 소통하고 이해를 깊게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외교관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주요한 것이 현지에 사는 동포 및 주재국 시민과 폭 넓고 깊게 소통하면서 나라가 하는 일을 이해시키는 것일 터인데, 이 책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그런 일들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따라서 한글판의 가장 큰 특징은 일본어판 출판 이후 질적으로 달라진 활동이 많이 들어간 것이다.

현지에서 책을 낸 뒤 나온 여러 가지 반응 중에서도 두 가지가 특히 마음 깊이 남는다. 하나는 민단이 발행하는 기관지 <민단신문>(2020년 12월 2일자)의 기사다. 이 신문은 신간 소개란에 내 책을 소개하면서 ‘서민파 외교관의 분투기’란 제목을 달았다. 내가 마음속으로 달고 싶은 제목이었다. 내용에서도 유명한 일본의 진보파 지식인 오타 마코토씨가 세계여행을 하면서 쓴 명저 <난데모미테야로우(何でも見てやろう), ‘무엇이든지 부딪혀보자’라는 뜻)>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라고 과찬을 해주었다. 또 하나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 선생이 내가 귀국한 뒤 <시나노마이니치신문>(2021년 6월 8일자) 석간 1면에 쓴 ‘오태규 총영사에 관해’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우치다 선생은 이 칼럼에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불릴 만큼 어려운 시기에 나와 같은 사람이 한일 가교 역할을 맡아주어 일본에도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두 글 모두 나에게 앞으로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해 달라는 부탁을 담은 ‘애정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6월초 코로나 사태 속에서 3년여 만에 귀국했지만, 코로나와 더위, 주변생활 정리에 치여 지인들에게 귀국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런 차에 소재두 논형 출판 사장이 이 책의 한국어판 출판의 의미를 알아주고 서둘러 책을 내주었다.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을 지인들에 대한 뒤늦은 귀국인사로 대신하고 싶다. 또 이 책이 어려운 상황에 있는 한일관계를 푸는 작은 보탬이라도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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