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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고학하며 경제학을 배운 민중경제학자

<유인호 평전>

by 오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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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도시샤대의 이타가키 류타 교수가 11월 초 연락이 왔다. 내가 이미 서평으로 소개한 <북에 간 언어학자 김수경>이라는 두터운 평전을 쓴 교수다.



최근 <유인호 평전>(인물과사상사, 2012, 조용래 지음)을 읽고 있는데, 책 내용 중 흥미 있는 내용이 있어 저자에게 문의하고 싶은 것이 있다, 혹시 저자를 알면 소개를 받고 싶다는 얘기였다. 알고 싶다는 것은 유인호 교수(1929-1992)가 교토에 있을 때 관여한 조선학교 활동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저자가 유 교수가 당시 쓴 일기를 토대로 조선학교와 관련한 얘기를 썼는데, 일기 내용이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이타가키 교수가 교토의 조선학교 문제도 연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바로 저자를 연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유인호 평전>이란 책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자가 조용래씨(집필 당시 <국민일보> 논설위원이었고 현재는 한일의원연맹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인 줄은 몰랐다. 이타가키 교수의 얘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물론 조씨와는 언론계에 있을 때부터 잘 아는 사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언론계에서 손에 꼽히는 일본통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서로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바로 양쪽을 연결해 주었다.



이런 돌발적인 '중매'를 계기로 나도 <유인호 평전>을 읽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유인호 교수의 이름을 들으면서 수출 주도형 한국경제를 비판한 해직 교수와 공해 문제를 선구적으로 제기한 학자라는 점이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그의 삶 전체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내가 총영사로 근무했던 오사카총영사관 관할지역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이 흥미를 당기게 했다. 일본인 교수도 읽고 있다는데 나도 읽어 봐야지 하는 분발심도 생겼다. 그래서 조만간 책을 주문해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이삿짐 정리를 하다가 박스 안쪽에 고이 모셔져 있는 책을 발견했다. 우연이 이렇게 몇 차례 겹치는 것도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해,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유 교수가 숨진 지 20주년을 기념해, 일곡(유인호 교수 호)기념사업회가 펴냈다. 조씨가 저자로 선정된 것은 평전의 주요한 자료가 된, 50여년 만에 일본에서 돌아온 5권의 일기를 해독할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유 교수가 일기를 일본어로 썼는데 휘갈겨 쓴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일본어를 웬만하게 하는 사람은 읽기가 어려워 일본에서 박사까지 받은 조씨에게 저자 의뢰가 왔다고 한다. 물론 유 교수와 각별했던 관계와 현역 언론인으로서 필력이 뛰어났다는 점도 고려대상이 됐을 것이다.



조씨는 서문에서 "한 인물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논평하는 것이 평전이라면 이 책은 평전으로서 실격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평전 작업 과정에서 그의 주장을 비판하고 분석하기보다는 공감하기에 바빴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가쁜 삶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자주 직면했다고 고백했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고난의 연속 속에서도 문제의식을 잃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확장하며 살아온 그의 삶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졌다.



저자는 그를 한마디로 "민중의 삶과 현장에 초점을 맞춘 민중 경제학자, 비판경제학자, 현장으로 내려온 경제학자"라고 평가했다. 또 한국 사회에서 경제 민주화, 농업 협업화, 공해 문제 등을 처음으로 제기한 선구자이며, 자신의 학문적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실천가라고 말했다.



나는 평전을 읽으면서, 그의 처절한 일본 생활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먹을 것도 잘 곳도 제대로 구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정진했던 힘이, 한국에서 학자 노릇하기 가장 어려웠던 1970년~80년대의 폭압적인 상황을 뚫고 전진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1949년 일본 유학을 위해 밀항한 뒤 54년 리츠메이칸대 대학원에 들어간 54년까지 무려 14번이나 거처를 옮겨야 하는 고난의 생활을 했다. 가난 때문에 대학원도 1년밖에 다니지 못하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좌파 계열의 운동을 하면서 두 차례 감옥에 들어갔던 경험도 그의 비판의식에 영향을 줬겠지만, 빈민 수준의 생활 경험이 없었다면 과연 마지막 생애까지 흔들림 없이 민중경제학자, 비판경제학자의 길을 걸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가 유신독재 시절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해직된 뒤에 경제학을 뛰어넘어 공해와 분단 등 사회 전반으로 문제의식을 확장한 것도 눈에 띄었다.



그가 살던 시대와 지금은 경제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상황이 매우 달라졌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학자의 역할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과연 지금 이 땅에 그처럼 민중의 삶과 민중의 경제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고 발언하는 경제학자가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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