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선족 학자의 절절한 '한반도 평화' 열망

김경일 추모 칼럼 모임집 <못 다 부른 민족의 아리랑>

by 오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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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만큼 한반도 평화에 관한 열망을 국내 매체를 통해 그렇게 오랫동안 절절하게 외쳐온 동포 학자도 없을 것이다. 바로 중국이름 진징이, 한국이름 김경일씨다.

조선족 출신인 그는 2004년 말부터 2021년 4월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국의 신문에 한반도를 주제로 한 칼럼을 써왔다. 베이징과 서울, 평양, 도쿄를 수없이 오가면서도 그의 관심은 오직 '한반도 평화'였다. 또 그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남북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주변 강국에 휘둘리지 않는 남북 주도의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남북한, 미국, 일본, 중국을 가리지 않고 격려했고, 그와 반대되는 것에는 국가를 불문하고 엄정하게 비판했다.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긍정적인 상황이 오면 기뻐하고 부정적인 상황이 도래하면 실망하는 모습이 글에도 확연히 나타날 정도로 한반도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평화와 전쟁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한반도 상황이 그의 애간장을 녹였는지, 2021년 11월 67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국내의 지인들이 그가 한국 매체에 기고했던 칼럼 199편을 모아서 펴낸 책이 <못 다 부른 민족의 아리랑>(논형, 2021년 11월, 고 김경일 교수 추모 모임)이다. 논형 출판의 소재두 사장이 추모 모임의 출판 계획을 듣고 200부를 비매품으로 찍었다. 나도 우연히 책을 받아 읽었다.

2004년 11월 30일 국내 첫 기고 칼럼인 <문화일보>의 '붉은 악마의 자율적 질서'부터 2020년 4월 26일 마지막 칼럼인 <한겨레>의 '총선과 남북관계'까지를 묶었다. 매체 별로 보면, <문화일보> 게재 25편(2004-2007), <내일신문> 게재 75편(2008-2020), <한겨레> 99편(2012-2020)이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가 존경하는 작가가 숨질 경우 그가 쓴 책을 모두 모아 보는 추모 독서를 한다는 얘기를 이전 어느 글에서 소개한 바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추모 독서의 유효성을 몸으로 깨달았다. 숨진 사람이 쓴 칼럼을 시계열적으로 모두 읽는 것이 그에 관한 평전 한 권을 읽는 것보다 그의 생각과 고민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칼럼이 나올 때마다 한 편씩 읽는 것과 전편을 쭉 이어서 읽은 것은 확실하게 다르다. 그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사가 무엇인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심지어 잘쓰는 용어, 어투, 문체뿐 아니라 글 속에 얼핏얼핏 묻어 있는 인생관까지도 엿볼 수 있다.

그는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경학으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줄기차게 강조한다. 즉, 지정학적 '대립과 대결'의 고리를 끊고 지경학적 접근의 '협조와 협력'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 매진하는 강대국에 한반도의 운명을 맡기지 말고 남북이 주도적으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북한의 핵 개발에 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항 수단으로 핵 개발을 했다는 논리를 수긍하면서도, 핵 개발은 '지정학의 극치'라고 비판한다. 그에게 지정학적 접근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가장 피해야 할 방법이다. 물론 남한에 대해서도 엄한 자세를 취한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북한 붕괴론 또는 흡수론의 통일정책을 취할 때는 한반도를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만드는 정책에 다름 아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의 글 전편을 읽다 보면, 그의 한반도에 대한 애정과 평화 열망이 한반도에 사는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왜 책 제목을 <못 다 부른 민족의 아리랑>이라고 지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추모 모임을 주도한 홍면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머리말에서 "김 교수는 한반도에 대한 주변국들의 영향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이 전향적 평화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무엇보다 안타깝게 생각했다"면서 "한반도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한국의 지인과 독자들에게, 그리고 서울과 평양, 북경과 국제사회를 향해 남북의 화해, 한반도 평화를 호소하고 권면해왔다"고 회고했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희구하고 지원해온 한 명의 훌륭한 학자를 너무 이른 나이에 잃었다.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면서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새싹이 돋아나듯 `새로운 김경일, 진징이'가 출현하길 기대한다. 그것이 하늘 나라에 있는 그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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