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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바닥' 한국언론, 회생 방법은 있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by 오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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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귀국해 느끼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는 '참담', 그 자체다.

국제적인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2021년도 언론자유지수는 아시아에서 1위(세계 42위, 대만 43위, 일본 67위)를 기록했지만,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서 조사한 2021년 언론신뢰도는 32%로 조사 대상 46국 중 최하위권인 38위에 머물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언론자유를 저해하는 외부 환경은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개선됐지만, 우리나라의 언론은 불신을 지나 '저주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걸 보여준다.

통계 수치보다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신랄하다. 새로 이사 간 아파트를 둘러봐도 신문을 구독하는 집을 눈을 씻고도 찾기 어렵다. 그나마 신문을 안 보는 것은 점잖은 편이다. 기자를 '불가촉민' 취급하고, 신문을 '계란판' 재료 정도로 조롱하는 게 보통이다.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눌 때 전직 기자라는 사실을 말하기조차 꺼려질 정도다.

저널리즘이 열화하고 불신 받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세계적인 조류라고 할 수 있다. 일본도 비슷하다. 신문 부수와 방송의 시청률이 뚝뚝 떨어지고, 보도의 질도 예전만 못하다. 가장 큰 원인은 인터넷의 영향일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저널리즘도 숙려보다는 속도, 이성보다는 감성, 지속보다는 찰나, 교훈보다는 선정성의 파도 속에 휘말려들고 있다. 또 전통매체에서 줄어든 수입을 인터넷 분야에서 보충하려는 경영의 자세가 이런 악순환을 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극도의 정파성과 상업성이 더해지면서 '최악의 저널리즘 위기' 국면이 도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도 저널리즘 없는 세상, 아니 저널리즘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하는 점에서 저널리즘 가치의 회복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듯이, 땅바닥에 떨어진 한국의 저널리즘도 기본부터 다시 세울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책장에 꽂혀 있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한국언론진흥재단, 2012년 12월, 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 지음, 이재경 옮김)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한국언론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지만, 적어도 기자가 어떤 원칙과 자세로 보도를 해야 독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를 제시해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기자들이 이 책에 나온 원칙을 온전히 따라하지 못할지언정 따라하려는 노력만 해도 추락한 언론의 신뢰를 상당 정도 회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책은 미국 저널리즘이 당면한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결과물로, 미국 기자 3천여명의 생각과 경험, 희망을 집약한 것이다. 점차 독자들이 기자와 보도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저널리즘이 거대 커뮤니케이션 산업의 한 영역으로 축소되는 현실에서, 어떡하면 독립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극도의 정파주의와 경영 우선주의의 늪에 빠진 한국 저널리즘에도 좋은 나침판이 될 수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저널리즘의 10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다.

2.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다.

3.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다.

4. 기자들은 그들이 취재하는 대상으로부터 반드시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

5. 기자들은 반드시 권력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자로 봉사해야 한다.

6. 저널리즘은 반드시 공공의 비판과 타협을 위한 포럼을 제공해야 한다.

7. 저널리즘은 반드시 최선을 다해 시민들이 중요한 사안들을 흥미롭게 그들의 삶과 관련 있는 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

8. 기자는 뉴스를 포괄적이면서도 비중에 맞게 보도해야 한다.

9. 기자들은 그들의 개인적 양심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10. 시민들도 뉴스에 대해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책에서는 10개 원칙을, 각 장별로 나눠 풍부한 현장 사례를 들면서 자세히 보완 설명하고 있다. 기자들이 10개 원칙을 책장 위에 붙여 놓고 하루에 한 번씩 읽어만 봐도 기사의 질이 확 달라지고, 더불어 독자의 신뢰도 커질 것 같다.

특히, 저널리즘의 본질이 각 언론사가 상투적으로 쓰는 '객관성' '공정성' '중립성'이 아니라, 사실 확인의 규칙에 있고, 그런 규칙을 독자에게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제4장은, 객관성 등의 방패에 숨어 왜곡을 정당화해온 기자들이 꼭 정독할 필요가 있다. 또 특종 욕심에 사로잡혀 왜곡과 거짓 뉴스를 꺼리지 않는 현실을 고발한 10장도 우리 언론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번째 원칙인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다룬 11장은, 쌍방향 소통 시대에 맞게 초판에 없던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시민이 뉴스의 대상에서 주체로 부상했지만 그에 맞는 책임도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저널리즘 안쪽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얘기가 중심이지만, 저널리즘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용하다. 저널리즘 안쪽에 있는 사람, 즉 저널리스트들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 그를 지적하고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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