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본은 왜 기를 쓰고 '한반도 냉전 해체'를 반대하나

시라이 사토시의 <주권이 없는 나라>

by 오태규


시라이 사토시(1977년 생) 교토세이카대 교수는 일본에서도 주목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레닌의 사상을 전공한 정치철학자이지만 일본을 붕괴 직전의 최악의 상황까지 몰고 갔던 3.11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계기로, 일본의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책을 연달아 쓰고 있다. 그동안 <영속패전론-전후일본의 핵심> <국체론-국화와 성조기> <무기로서의 '자본론'> 등의 문제작을 쏟아냈고, 책을 낼 때마다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다. 이 세 권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판됐다.




그의 근무처가 마침 교토에 있기 때문에 오사카총영사 시절 가끔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를 있었다. 우치다 다쓰루 선생이 <인신세의 '자본론'>을 쓴 사이토 코헤이 오사카시립대 준교수와 함께 주목해야 할 일본의 젊은 작가로 추천해준 두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가 최근 <영속패전론> <국체론>의 연속선 상에서 낸 책이 <주권자가 없는 나라>(강담사, 2021년 3월)다. 이 책은 코로나 19 감염 사태를 맞아 무능과 무기력을 드러냈던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정권 시기까지를 시기를 다루고 있다. 영속패전론과 국체론에서 사용했던 '패전의 부인' '영속패전 레짐' '국체' 등의 개념을 사용해 시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그가 일본의 정치체제에만 집중해 분석하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한반도가 일본의 '전후 국체' 즉 '영속패전 레짐'에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는 '국체(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체계)'라는 개념을 사용해 일본의 근현대사를 전전의 국체와 전후의 국체로 나누어 설명한다. 전전은 메이지유신부터 패전까지를 3단계로 나눠, 메이지 시기=국체의 형성기, 다이쇼 시기=국체의 안정기, 전전의 쇼와 시기=국체의 붕괴기로 설명한다. 전후도 세 시기로 나눠 패전 및 점령기로부터 1970년대까지를 국체의 형성기, 1970년대부터 냉전의 붕괴까지를 국체의 상대적 안정기, 냉전 붕괴부터 현재까지를 국체의 붕괴기로 규정한다. 다만 전전에는 국체가 '천황'이었지만 전후에는 천황 대신에 '미국'이 국체가 됐다는 게 다른 점이다. 그는 시간상으로도 메이지유신부터 패전까지가 77년이고, 패전 이후 2022년까지가 77년이라는 점에서 패전을 기점을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최근 코로나 감염 사태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자민당 정권은 마치 패전 직전 정신론에 빠져 전쟁을 계속 추진했던 도조 히데키 정권과 유사하다고 신랄하게 비유한다.




그는 전후 일본은 전전의 국체였던 천황을 상징 천황으로 유지시킨 채 미국이 국체가 되어 지배하는 시대가 됐으며, 이런 체제가 성립하는 데 결정적인 배경이 된 것이 한국전쟁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전쟁 부분은 일본의 국체론과 관련한 그의 관심이 한반도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미국이 일본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된 전후의 국체 형성에 한국전쟁이 네 가지 점에서 큰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첫째 전후 미국의 일본 점령정책이 민주화에서 반공화로 일본 사회가 방향을 트는, 이르는 '역코스'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고, 둘째 '전후 헌법과 군사력 보유'라는 모순된 문제를 발생시켰다. 셋째 한국전쟁이 어느 일방의 승리가 아니라 휴전으로 끝나면서 적당한 정도의 자유민주주의 공간이 생겼고, 넷째 경제가 일본이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정치, 경제면에서 한국전쟁은 전후 일본의 역사적 기원이고, 전후 국체는 '한국전쟁 레짐'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아베 신조 정권이 왜 한반도의 종전선언 등 냉전의 해체를 맹렬히 반대했는지를 설명한다. 한반도 전쟁 상태의 해체가 곧 정, 관, 재계 및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친미세력의 존재 기반인 전후 레짐의 근거를 없애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일본 정부가 2019년 '안보 우려'를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국 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을 "한국전쟁을 끝내려고 한다면 당신은 우리의 동맹자가 아니다. 오히려 적이다. 그래도 좋은가? 그렇다면 전쟁을 끝내지 마라. 당신 어떻게 해서라도 그렇게 한다면 당신들을 경제적으로 초토화하겠다"(235페이지)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한다. 섬뜩할 정도의 해석이다. 이 책은 서장과 종장을 제외하고 모두 5장으로 되어 있는데, 한반도와 관련한 분석은 제4장(오키나와로부터의 물음 한반도에의 상상력)에 자세하게 나온다.




그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전후 일본의 새로운 국체로 등장하고 친미세력이 그 체제 속에서 이득을 누려온 시대는, 냉전의 해체를 비롯한 시대의 변화와 함께 종말을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상징이 코로나 사태에 우왕좌왕하는 정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체제가 길게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주권자들이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마지막 종장(왜 우리들은 주권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가)에서 "일본인의 근본적인 정치불신은 어느 의미에서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그와 같은 정부밖에 우리가 가지지 못하는 것, 갖지 못했던 것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고 묻는다. 문제를 느낀다면 주권자로서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주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역전을 허용한 후보'의 이해하기 힘든 '토론 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