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과 한국외교
미국이 동맹 재구축을 통한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포위망을 짜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동맹인 프랑스 및 유럽연합과 파열음이 나오고, 일부 동남아 국가들도 우려하는 등 후폭풍도 일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대외적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내세웠던 '미국 일국주의'에서 벗어나 동맹 강화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9월 15일에 전격적으로 발표한 미국, 영국, 호주의 '미영호(AUKUS) 동맹' 결성과 2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 대면으로 실시된 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쿼드 정상회의 개최는 모두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체제 짜기의 대표적인 움직임이다. 쿼드는 지난 3월 온라인으로 제1차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이번에 처음으로 대면 회담을 했다. 겉모양만 보면, 트럼프 정권 때의 단독주의와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새판 짜기 과정에서 파열음도 크게 발생하고 있다. 미영호 동맹에서 소외된 프랑스가 반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유럽연합도 아시아태평양 전략에서 배제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며 프랑스에 동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이 유럽연합 쪽과 사전 협의 없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격적으로 철군하면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신세가 됐던 불만이 깔려 있다. 이들은 바이든 정권이 겉으로는 동맹 중시를 말하면서 속으로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 제일주의 를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미영호 동맹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호주에 핵 잠수함 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것에 반발의 수준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미국의 호주에 대한 핵 잠수함 기술 공여로 프랑스와 호주가 맺은 78조원 규모의 재래식 잠수함 계약이 날라갔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역사상 최초로 미국과 호주 주재 대사까지 소환했다. 일단, 바이든 미 대통령과 이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2일 전화회담을 통해 소환된 대사를 복귀시키고 10월에 대면 정상회담을 하기로 하는 등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프랑스가 이번에 잃게 된 손실을 어떻게 매꿔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미영호 동맹과 관련해서는 동남아 국가들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공개적인 성명 발표 등을 통해 "오커스 동맹이 지역의 핵 군비경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나머지 동남아 국가들도 오커스를 찬성하자니 미국 편으로 인식되고 비난하면 중국 편으로 비치는 곤란한 상황에서 미묘한 균형을 취하고 있다.
쿼드는 미영호 동맹보다는 신중한 움직임을 하고 있어, 눈에 띄는 반발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중립 독자 외교노선을 취하고 있고 중국과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가 쿼드가 중국을 견제하는 군사동맹화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군사적인 색깔보다는 코로나 및 기후변화 대응, 반도체와 초고속통신망 등 첨단기술 공급망 구축을 위한 협력에 힘을 쏟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총리실 관계자는 쿼드의 향방에 관해 "중국과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하는 양자선택을 밀어붙이면 인도는 떠나가고, 아세안 등을 끌어들이지도 못할 것"이라고 방향 잡기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런 움직임에서 보듯, 당분간 가장 뜨거운 국제 이슈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잘 살피고, 우리나라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 외교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