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마라탕' 발각과 정치 및 방송 윤리의 타락

JTBC의 <가면토론회> 이준석 '마라탕' 가면 출연

by 오태규


포털에 나온 몇몇 기사를 보고 어리둥절해서 말문이 막혔다. 바로 종합편성채널 <JTBC>가 1월 5일부터 새로 시작한 '가면' 토론프로그램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마라탕'이라는 가면을 쓰고 출연하고 있다는 기사들이다.




그 중 대표적인 기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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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패널 '마라탕' 이준석 대표였다...가면 쓰고 토론배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 가면을 쓰고 나와 ‘익명 패널’로 활동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 5일부터 JTBC 시사교양 프로그램 <가면토론회>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가면토론회는 익명의 논객 6명이 정치·사회 사안을 놓고 3대 3으로 토론배틀을 벌이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방송인 박미선이 MC를 맡고 있다.


각 출연자들은 ‘마라탕’, ‘진실의 입’, ‘민트초코’, ‘캔맥’, ‘AI’, ‘때타월’ 등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머리와 상의를 모두 덮는 의상과 음성변조 장치 등을 통해 신원을 철저히 가리고 토론을 하는 점이 특징이다.


방송이 계속되자 시청자들은 한 출연자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마라탕으로 나온 패널이 이 대표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면서다.


마라탕 패널은 “허위 이력 기재 등 문제가 있다 한들, 대한민국의 영부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한다면 전과 4범은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는 게 맞다”, “자격기준으로 적용하기 시작하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출마 자격이 안 된다”, “어부지리로 올라간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내려갈 것” 등 발언을 했다.


그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대표도 여가부 관련 토론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고 발언하는 등 본인에 대한 ‘셀프 비평’을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당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익명으로 활동하는 내용에 자세한 설명은 어렵다”고 밝히면서, 출연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경향신문> 1.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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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컨대 이 프로그램은 <문화방송>의 인기 음악프로그램인 <복면가왕>의 아이디어를 토론 분야까지 확대 적용한 복면가왕의 아류로 보인다. 시청률과 그에 따른 광고수입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는 상업 방송사가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것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어떤 면에서는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예민한 사안에 관해 더욱 솔직한 생각을 말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복면가왕처럼 '역 관음증'을 불러일으키며 흥미를 자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긍정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대선을 바로 앞두고 정치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의 토론에, 제1야당의 대표가 복면 토론자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히 정치윤리의 타락이라고 생각한다. 공당의 대표가 선거 쟁점에 관해 찬반의 생각이 있으면 당당하게 얼굴을 내놓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 된다. 복면 참가는 그의 주장이 마치 신분을 밝히면 곤란한 일반 시민의 목소리인 것처럼 여론을 오도한다. 더욱이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한 토론에서는 "이 대표도 여가부 관련 토론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고 자기 피알까지 했는데, 이것은 자연스런 오도가 아니라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여론 오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문제는 방송사의 방송윤리 타락이다. 방송사는 최소한 대선 쟁점과 관련이 있는 사안에는 정당의 대표가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어야 마땅하다. 복면 토론이라고는 하지만, 방송사는 당연히 복면 참가자의 신원을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방송사가 이런 민감한 주제에 한 정당의 대표에 복면을 씌워 일방적으로 발언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것은 선거에서 한 편을 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이 한 정당에만 인센티브를 주는, 즉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없는지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이 대표의 '마라탕' 복면 출연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도 영 마땅치 않다. 고작 이와 관련한 보도가 "'마라탕' 가면, 이준석 대표로 밝혀져"라는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그런 단순한 사실 보도를 넘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정치, 방송의 윤리까지 따져묻는 한 발 더 깊숙하게 들어간 보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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