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신감각의 미디어>, 한류 붐
일본에서 근무할 때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정치적으로 한일관계가 나쁜데도 한류의 인기는 왜 뜨거운가 하는 점이었다. 현상이 어떤지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금세 알 수 있지만, '왜'에 관해서는 자신 있게 설명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만난 책이 <K-POP 신감각의 미디어>(암파신서, 김성민 지음, 2018년 7월)다. 이 책을 읽어 보고, 많은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동포나 일본 시민도 마찬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터이니, 총영사관 주최로 심포지엄을 열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홋카이도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저자 김성민 교수를 초청해, 2000년 6월 26일 '일본 속의 한류와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 적이 있다.
잘 알다시피 일본에서는 2003년 <겨울연가, 일본에서는 '후유노소나타'>를 시작으로 제1차 한류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 붐이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와 함께 2011년까지 2차 붐으로 이어졌고, 그 뒤 한동안 빙하기에 들어갔다가 2017년에 다시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로 대표되는 제3차 붐이 일었다. 또 2020년 들어서는 코로나 와중에서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등 한국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대유행하면서 제4차 한류붐이란 소리가 나왔다. 사실 이때만 해도 제4차 한류붐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았는데, 나 자신이 '제4차 한류 붐'이란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의 한 명이다. 나는 <사랑의 불시착>이 당긴 붐은 코로나로 인해 늘어난 재택 시간과 함께 한류 소비층이 젊은 여성층에서 전계층으로 퍼졌다는 점에서, 이 때의 한류 붐이 이전과 다른 현상이라고 봤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단연 인기의 인물은 이 책의 저자인 김성민 홋카이도대 교수(미디어투어리즘연구센터장)였다. 그는 '일본 안의 한류-역사와 특징, 그리고 과제'라는 발표로 청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는 한류를 한일 정치관계라는 함수로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제2차 한류와 제3차 한류의 단절이 시작한 2012년에 주목하며, 사실은 2012년에 일본에서 한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제1차 한류 붐과,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가 활약했던 2011년까지 제2차 한류 붐은 한일이라는 지역적인 시야에서 한류가 대중 매체를 중심으로 소비됐다면, 2012년부터는 세계적인 맥락에서 일본 한류 팬들이 자기만의 통로(콘서트, 유투브 등 소셜미디어)로 한류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침 그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 한일 간 정치 갈등이 겹쳐 정치적 이유로 한류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대중매체 밖의 라이브 콘서트나 유투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한류 애호층이 세계적인 한류의 유행 흐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따라서 앞으로도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의 심포지엄 발표의 내용은 이 책의 일부 내용을 요령 있게 정리한 것이다. 한때 일본 J-POP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달한, 그리고 J-POP의 한 분야로 일본에서 소비되던 K-POP이 2012년 께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독자성을 가지고 세계적인 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K-POP과 J-POP의 관계뿐 아니라 훨씬 넓은 시각에서 K-POP의 발전 과정을 분석하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서울대 음대 작곡가 출신이면서 미디어를 전공한 사람의 특장을 살려, K-POP을 단지 노래가 아니라 한국적인 것(K)과 보편적인 노래(POP)라는 욕망이 교차하는 미디어라는 시각에서 분석을 하고 있다. 그는 음악, 산업, 사회적 감각이 '케이(K)'와 '팝(POP)'이라는 두 개의 욕망을 이어주고 있고 K-POP을 만든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말하며 K-POP의 탄생부터 확장, 핵심을 더듬어 간다. K-POP을 가장 총체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격렬한 변화의 와중에 있는 미디어와 친화성을 유지하면서 지금 여기의 감각을 매개해가는 것이 가능할까, 앞으로도 사람들은 K-POP를 통해 사랑이 충만한 팝의 순간을 계속 느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K-POP이 계속 발전하기 위해 풀어야 할 저자 나름의 과제 제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케이팝의 작은 역사>(글항아리, 2018년 12월)라는 제목으로 한글로도 출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