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제로, 하려면 할 수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별명은 '헨진(変人)'이다.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좀 더 자극적인 단어도 있지만 '별난 사람'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그가 총리를 지냈던 시기(2001년-2006년)는 내가 도쿄특파원을 했던 시기(2001년-2004년)와 겹친다. 그는 총리 시절 항상 화제를 몰고다녔다. 거침없고 화려한 언행으로 '극장식 정치'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그는 안보 면에서는 미국추종주의를 강화하고,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인물로 평가된다. 2002년 9월에는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일관계 정상화를 시도하는 등 독자외교를 추구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납치 후폭풍'과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가속화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과 관계는 썩 좋지 못했다. 매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는 바람에 한일관계에 주기적인 냉기류를 몰고왔다. 그래서 한국에서 그에 관한 인상은 '비호감'이 많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헨진'이란 별명 답게, 총리에서 물러난 뒤 12년이 지난 2018년 다시 화제의 인물로 등장했다. 그가 쓴 <원전 제로, 하려면 할 수 있다>(오타출판, 2018년 12월)는 책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원전 찬성론자에서 원전 폐지론자로 변신한 이유를 쉽고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아사히신문>도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2018년 12월 31일자에 한 면을 할애해 그의 인터뷰 기사를 자세하게 실은 바 있다.
보수 성향의 정치가인 그가 왜 원전에 관한 생각을 180도 바꾸게 됐는지는 큰 흥미거리가 아닐 수 없다. 쉽게 바꾸기 어려운 생각을 바꾼 것도 관심사이지만 그의 위상으로 볼 때 일반 여론에 끼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이다.
그가 원전에 관해 생각을 전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을 절멸 위기로 몰아넣었던 2011년 3.11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다. 그는 그때의 충격으로 2014년 도쿄도 도지사 선거에서는 자신의 고향인 자민당이 아니라, 탈원전 을 공약으로 내세운 야당계 무소속 후보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행동으로 보여줬던 변신을, 글로 정리해 단행본으로 내놓은 것이다.
"원전 제로. 지금 가동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는 정지시키고 언제가는 모두 폐지한다. 지금부터 새로운 원전은 건설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가는 모든 국내의 전력은 자연 에너지로 대체한다. 일본은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서 위와 같은 내용이 "일본 에너지정책에 관한 나의 결론"이라고 선언한다. 그 이유는 경제산업성(경산성)이 말하는 "원전은 안전하며 비용이 적게 들고 깨끗하다"는 논리가 완전히 거짓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리 당시에도 경산성 관료들로부터 이런 말을 수 차례 들었으나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하는 뜻도 포함해, "일본이 원전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이 싸다는 논리는 정부의 지원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원전이 더 비싸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폐기물 처리 대책도 없이 원전을 짓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화장실 없는 맨션"을 짓는 꼴이라고 통박했다. 원전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3.11 사건 이후 2년 동안 원전을 한 기도 가동하지 않고도 정전 없이 지냈다고 반박했다.
그는 원전 없이도 생활이 가능한데도 원전을 추진하는 것은 경산성 관료들이 전력회사의 낙하산이 되어 이해관계를 공유하기 때문이라면서, 총리가 원전 폐지 방침을 정하고 지시를 하면 원전 제로는 쉽게 달성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어려운 사안을 대중의 언어로 바꾸어 쉽게 설명하는 '선동형' 정치가 다운 논리라고 할 수 있는 면도 있지만, 총리로서 일본 원전정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경험한 지도자의 결론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전 정책이 보수와 진보 사이에 큰 정치 쟁점의 하나인데, 이웃나라 전 총리의 충격적인 주장이 담긴 책이 출판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여태껏 번역이 되지 않고 있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불가사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