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미엄'에서 '리스크'로 전락한 이준석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하바드대

by 오태규

2021년 6월, '마이너스 3선'(일명 마삼중)에서 일약 국민의힘 당대표가 된 이준석은 한국의 낡은 정치판을 갈아엎을 수 있는 총아로 등장했다. 마치 1970년대 초 야권의 노장정치에 맞서 '40대 기수론'을 들고나온 김영삼을 연상시켰다.


586세대의 '정치적 올바름'과 '내로남불' 행태에 대한 염증과 30대의 젊은 나이라는 신선함, 그리고 하바드대 출신이라는 명성에 대한 대중의 선망이 어우러지면서 '이준석 현상'을 불러왔다. 특히, 586세대의 기득권 체제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본다고 느끼는 2030 남성들이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이런 힘과 기세를 바탕으로 이번 20대 대통령선거에서도 2030과 60대 이후 세대가 연합해 기득권인 4050세대를 포위해 승리하겠다는 '세대포위론'을 들고나왔다. 당 안에서 윤석열 후보가 영입한 신지애 등 페미니스트와 윤핵관 세력을 축출하거나 뒤로 미뤄내고 자신 나름의 선거판을 짰다. 지금 국민의힘 선거운동이 후보인 윤석열과 당대표인 이준석의 투톱체제로 가동되고 있는 것이 그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2월 들어 윤석열-이준석의 투톱체제가 안정되면서 지지율도 꾸준히 상승했다. 2030세대의 윤 지지가 돌출했다. 이준석의 세대포위론이 먹혀드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이준석 프레미엄'이 크다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선거가 막판에 이를수록 이준석이 프레미엄이 아니라 '리스크'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선의 가장 큰 변수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 협상이 사실상 무산된 것은 "이준석 때문"이라는 불만이 당내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가 여전 공천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안 후보와 사감이 작용했기 때문인지 단일화를 하지 않아도 승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단일화의 가장 큰 걸림돌임은 확실해 보인다.


그의 리스크는 가벼움에도 있다. 경쾌한 처신은 좋을 때는 '발랄함'과 '신선함'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나쁠 때는 '진중하지 못함'과 '씨가지 없음'으로 전화된다. 최근 들어서는 좋은 의미보다 나쁜 의미로 비춰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안철수 후보의 숨진 운동원의 유지를 받들어 승리하겠다는 말을 비난하면서 "숨진 사람이 어떻게 유지를 남기느냐"는 말을 했는데, 논리는 맞겠지만 망자에 대해 나쁜 말을 삼가는 사회도덕과는 떨어진 말이다. 이 대표의 이 발언은 "맞는 말도 싸가지 없게 한다"는 한때의 명언을 다시 소환한다. 이보다 사회 통념상 더 싸가지 없고 못된 말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가 이재명 후보의 에스앤에스에 들어가 이 후보가 제시한 공약에 깐죽거리는 댓글을 달아대는 것도 눈살을 지푸리게 한다. 평범한 누리꾼도 잘 하지 않을 일을 공당의 대표가 비꼬는 말을 남기는 것은 스스로 정치를 왜소화하고 희극화하는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 후보의 공약이 문제가 있으면 떳떳하게 기자회견을 열어 반박하면 될 일인데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잘 봐줘서 '관심종자의 치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준석이 지금 시대에 '파격의 정치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파격의 힘은 '정격'을 제대로 갖췄을 때 빛이 난다. 야구에서 아무리 커브에 능한 투수라고 하더라도 강속구가 없으면 견딜 수 없듯이, 정치도 단단한 철학과 정책을 갖추지 않은 채 잔재주로 만으로는 오래 할 수 없다.


지금 이준석이 '프레미엄'에서 '리스크'로 전화되는 것은 필연적 귀결일 것이다. 젊은이들의 불만과 갈등을 이용할지는 알지만 그를 풀어줄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인, 책임 있는 공인의식보다는 무책임한 인기에 집착하는 정치인이 반년 이상 인기를 누려온 것만도 기적일지 모른다. 그의 경박하고 유치한 정치 행태를 보면서, 대중을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오래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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