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나오는 특임공관장의 정의는 "대통령이 필요한 경우에 직업 외교관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 특별히 임명하는 공관장"이다. 쉽게 말하면, 외교부 외부에서 기용된 공관장을 말한다.
언론계 출신으로 오사카총영사에 임명됐던 나도 특임공관장이었다. <가까워지며 변화하기>(태희, 정범구 지음, 2021년 6월)는 특임공관장으로 독일대사를 지냈던 정범구 대사(2018년 1월~2020년 11월)가 대사로 일하면서 페이스북에 기고했던 <대사관 이야기>를 엮어 낸 책이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듯이, 같은 특임공관장 출신이 낸 책이어서 그런지 읽기 전부터 훨씬 마음이 끌렸다. 특임공관장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엇갈린 평가가 있지만, 특임공관장의 가장 큰 장점의 하나가 전문외교관이 갖지 못한 소통과 발신력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전문 외교관 출신 공관장 중에서도 특임공관장 못지 않게 소통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정 대사의 이 책도 특임공관장이 소통과 발신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대표 사례의 하나다. 더욱이 오랜 독일 유학생활 경험,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명 사회자이면서 재선 국회의원이라는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관록이 책 곳곳에서 녹아들어 재미와 의미로 꽃을 피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위엄과 품위의 인상이 강한 외교관을 '해외 영업사원'이라고 단정하고 임무을 수행하는 모습이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스스로 '해외 영업사원'을 자임하며 일을 한 대사는 정 대사가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영업'일 정도로 철저한 영업 마인드로 무장한 채 대사 업무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대목은 그가 얼마나 절실하게 외교를 영업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세일즈맨의 우상이라고 할 봉이 김선달은 주인 없는 대동강 물도 팔아 먹었다는데 거기 비하면 우린 얼마나 영업할 것이 많단 말인가! 정말 세계는 넓고, 영업할 거리는 많다."(280페이지)
책을 쓴다는 것은 일부 관심 있는 사람만이 아는 지식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의미도 있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과 독일의 관계에 관해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됐다.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씨의 존재도 그 중 하나다. 읽다 보니 독일에서 이미륵씨는 일본에서 윤동주처럼, 문학과 삶을 통해 양쪽의 시민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주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됐다. 또 한국과 독일의 무역량이 영국과 프랑스를 합친 것보다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1963년 12월 21일, 247명의 한국인 광부가 루르 지방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1977년까지 모두 8000명의 광부가 독일로 왔다. 1965년부터 간호사들이 파견되어 모두 1만 2000명의 한국 간호사들이 독일 각 병원에 배치되어 일했다. 이들은 현재 5만을 헤아리는 독일 교민사회의 주축이 되었고, 이들의 2세, 3세들이 독일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148페이지)
독일의 동포사회가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에 돈을 벌기 위해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로부터 시작된 것은 알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대사의 주요한 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주재국 요인들과 만남, 주재국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들과 만남도 엿볼 수 있다. 특히, 북한 대사와 만남이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활발하게 이뤄지다가 관계가 원할하게 전개되지 않으면서 소원해지는 것을 보면서 외교는 안팎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책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대사 재직 시절은 현직),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만나 나눈 얘기, 숨진 빌리 브란트 전 총리, 에곤 바 전 특임장관과 얽힌 추억도 나온다. 저자는 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인상을 '거물의 향기'라고 말했는데, 그 향기가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척박한 마음에도 스며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제목 <가까워지며 변화하기>는 동방정책을 추진한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베를린 시장 시절에 공보실장, 총리 시절의 비서실장, 특임장관으로 동방정책의 기틀을 잡는 데 큰 공헌한 에곤 바의 모토인 '접근을 통한 변화'를, 저자가 우리 말로 풀어 쓴 것이다.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으로 통일을 이룬 독일의 경험을 우리 식으로 받아들여 남북통일로 이어가자는 저자의 속 마음이 담겨 있는 제목이 아닐까, 멋대로 생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