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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전 총리-부패 정치인인가 친서민 개혁 정치인인가

<다나카 카쿠에이>, 일본총리, 록히드 사건

by 오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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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가쿠에이만큼 일본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는 정치인도 드물다. 한 쪽에서는 금권정치, 이익공여 정치의 상징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구악 정치인의 대표로 규탄하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서민의 삶을 개선시키고 일본의 독자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한 개혁적인 정치인이라고 추앙한다.

그가 일본에서 '지의 거장'으로 불렸던 다치바나 다카시가 1974년에 <문예춘추>에 쓴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금맥과 인맥>을 계기로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말년에 록히드 수뢰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을 보면 돈 문제에서 깨끗하지 않은 정치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도 서민들 사이에서 많은 열광적 지지자가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구악 정치인이라고 몰아붙일 수만은 없는 측면이 있다. 미국보다 먼저 중국과 수교를 단행하고 에너지 자립을 추구하다가 미국에 미운 털이 박혀 제거됐다는 설이 파다할 정도로 대미 자립외교를 추구한 것도 사실이다. 최근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서민의 삶이 팍팍해지고, 일본 정부의 대미 추종주의 외교가 강화되면서 그에 대한 재평가가 나오는 것은 그의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씨와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이자 언론인 사타카 마코토가 <재일을 산다>는 책에 나오는 대화의 일부다. 앞의 문단이 사타카의 얘기이고, 뒤가 김 시인의 말이다.

"친구인 정치부 기자인 하야노 도루가, 가쿠에이를 사회민주주의라고 하더군요. 실제 월산회(에쓰잔카이)라고 불리는 가쿠에이의 후원회에는 공산당과 일본농민조합에 속했던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가쿠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고 좋고 나쁜 양면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토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개혁적인 생각을 대변한 사회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치의 핵심은 격차를 축소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나는 실감을 가지고 동의한다. 니가타는 지금에는 신간선이 다니지만, 가쿠에이씨 때는 매우 불편한 곳이었다. 시집 <니가타>를 쓰기 위해 2번 정도 방문했지만 정말 땅끝과 같은 벽지로, 그곳에 가려면 돈도 시간도 꽤 드는 곳이었다. 그런 곳의 교통 편을 개선한다든가 벽지를 조직이 원조하는 사회로 만들어 가는 것은 사회주의 안의 변혁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자민당 지배 보수정치에 비판적인 두 사람이 부패 정치인의 상징처럼 돼 있는 다나카 가쿠에이를 상찬하는 것이 놀랍다.

이 대화 중에 나오는 하야노 도루는 <아사히신문>에서 다나카를 담당했던 기자다. 총리 시절에서부터 그가 숨질 때까지 지근 거리에서 다나카와 다나카 파벌을 취재했다. 그가 1974년 정치부 초년기자 시절 처음 다나카 총리 담당 기자로서 그와 인연을 맺은 뒤 1995년 그가 숨질 때까지 20여년의 취재를 총결산하면서 쓴 다나카 평전이 <다나카 가쿠에이>(중공신서, 2012년 10월)다.

20년을 지근 거리에서 만나고 묻고 듣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매력에 사로잡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책 내용은 기자로서 객관적 거리를 지키려고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는 서문에서 그를 '평화'와 '풍요'를 갈구하던 전후를 상징하는 정치가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묻는다. "도대체 다나카 가쿠에이라는 정치가는 어떤 사람인가. 일본을, 특히 혜택을 보지 못한 지역을 번영으로 이끈 인물인가, 돈 다발을 돌리면서 권력을 구하고 권력으로 다시 돈을 끌어모은 사람인가."

그는 이 부분에 관해 확실하게 자신의 판단을 내놓지는 않지만, 책 전체를 읽어보면 전자 쪽에 중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의 백미는 제3장 '니가타 3구-월산회와 에치고교통이라는 힘의 원천'이다. 니가타 3구는 그를 16번 당선시켜주고, 정치적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몰표로 그를 응원해준 곳이다. 저자는 록히드 사건 등의 정치적 곤경에서도 오뚜기처럼 재기하는 다나카의 저력을 알아보기 위해, 1980년 자원하여 그의 선거구가 있는 니가타지국의 기자로 간다. 1년 반 동안 니카타 3구를 샅샅이 누비며 다나카의 힘의 원천을 탐사하면서 쓴 부분이 제3장이다. 내가 이 장을 백미라고 하는 것은 하야노 기자의 기자정신이 가장 잘 구현된 곳이기 때문이다. 잘 나가던 정치부 기자가 지방 벽지의 지국 근무를 자원하고 보내주는 회사도 대단하지만, 산골 곳곳을 누비며 다나카의 선거운동을 돕는 사람 1456명(월산회 간부)를 일일히 만나 탐문 취재를 하는 열정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가 찾은 것은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다나카'다. 과거에 공산당, 사회당, 농민조합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개선해주려고 혼신의 노력을 해주는 다나카 지지로 돌아섰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월산회는 다나카 가쿠에이의 후원회라기보다 다나카를 '맹주'로 하는 민중동맹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은 평전인 만큼 그의 출생에서부터 숨질 때까지 그의 전 인생을 다루고 있다. 초등학교 출신의 입지전적인 인물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 편의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다나카의 모습은 20년 이상 그와 희로애락을 나눠온 담당기자가 그린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한 인물을 다각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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