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총영사 시절 이야기
내가 '특임 공관장'으로 오사카총영사에 부임했을 때 가장 어색한 것이 전문에 쓰는 용어였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본직(本職)'이란 용어다.
본직'은 대사나 총영사가 전문을 발신할 때 자신을 표현하는 '1인칭 명사'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전문은 공관장이 공관의 활동 내역을 장관에게 보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공관에서 보내는 전문은 모두 '발신 공관장-수신 장관'의 모양새로 작성된다.
그런데 이 정체불명의 '본직'이란 용어는 외교부 밖의 사람들은 전혀 쓰지도 않고, 익숙하지도 않은 용어다. 나는 처음 전문을 보낼 때 도저히 내가 알지도 못하는 용어로 전문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공관장인 내가 장관에게 보고하는 것이라면, '나'라고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겸손어인 '저'를 사용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공식문서에 쓰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직원들이 '본직'이라고 써서 올린 전문을 '나는' 또는 '내가'라고 고쳐서 보냈다. 이를 본 일부 직원들이 찾아와서 "관례대로 하는 것이 좋다" "그런 표현은 처음 본다"고 본직으로 고쳐쓰기를 건의하기도 하고, '이상하다'며 웅성거리기도 했다. 다른 나라 공관에서 근무하는 비 외교부 출신 후배는 "그쪽 직원들은 공관장을 '본직'으로 쓴다는 사실도 공관장에게 가르쳐주지는 않는 모양이죠"라고 직접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물론 극소수이지만 명칭 변경을 지지하는 직원도 있었다.
나는 이런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관행이나 언행을 바로잡으라고 특임 공관장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내 방침을 밀고 나갔다. 그래도 여기저기 수근대는 움직임이 감지돼, 한때는 괜히 튀지 말고 '본직'으로 회귀할까 하는 나약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차에 외국의 공관장들은 어떻게 전문에 자신을 표현하는지 알고 싶었다. 마침 2018년 6월13일, 중국총영사 주최로 '일본어를 하는 오사카지역 총영사 모임' 파티가 열렸다. 이때 나는 여러 나라 공관장들에게 물었다. 간사이 담당의 일본 대사는 "일본의 경우 대사는 '본사(本使)'로, 총영사는 '본관(本官)'으로 쓴다"고 말했다. 미국, 영국을 비롯한 영어권 총영사는 "처음에는 'The post'와 '나'를 같이 쓰다가 그 다음부터 '나'로 쓰거나 직위를 그대로 쓴다"고 말했다.
이들의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 외교부가 쓰는 '본직'은 일본의 호칭을 변형한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래서 더욱 다른 식으로 고쳐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뒤 많은 전문용어를 일본에서 차용했왔고, 외교 용어도 그런 것이 많다.
'일본어를 하는 총영사 모임' 파티를 했을 즈음,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지시사항이 하나 날라왔다. 보고서(전문)을 쓸 때 알기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 지시사항에 내려오게 된 배경에, 내가 본직이란 용어를 바꿔쓴 것이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이 지시가 나의 용어 변경에 천군만마의 힘이 됐고, 그때부터 본직과 나 사이에서 왔다갔다는 하는 고민도 사라졌다. 물론 그 전부터 '나'라는 것이 너무 튄다는 생각에 '총영사'라는 이름으로 바꿔 전문을 썼다. 요즘은 대부분의 공관은 '대사' 또는 '총영사'의 이름으로 전문 보고를 하고 있다.하지만 아직도 '본직'을 사용하는 전문도 더러 눈에 띈다.
한때 법원의 판결문에 대해, 일본식의 문어체에다가 그것도 한 없이 길게 늘어지는 장문으로 돼 있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법원이 이런 비판을 수용해 알기 쉬운 한글 문장으로 판결문을 쓰는 노력을 펼친 결과, 최근은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위주의 판결문이 많아졌다. 가장 보수적인 관청이라는 법원도 이럴진대 가장 선진 흐름에 밝아야 할 외교부가 가장 고루한 문장을 쓰는 것은 남사스러운 일이다.
나는 외교부가 외교활동을 정리해 보고하는 '전문' 작성 교육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고쳐써야 할 용어를 찾아 좋은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