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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Mar 28. 2022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인물의 전시장 <삼국지>

서평, 삼국지, 이문열, 대선 패배

제20대 대통령선거(3월 9일)를 맞아 심한 앓이를 했다. 응원하던 이재명 후보의 너무 아쉬운 낙선으로 마음도 아팠지만, 오미크론에 걸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방역당국에서 감기 정도라고 하길래, "몇 일 지나면 낫겠지" 하고 방심하다가 결국 40도 이상의 고열과 오한이 찾아와 10일 밤 119를 불러 집 근처 병원에 일주일 정도 입원했다. 폐에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상당히 깊숙하게 침투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퇴원을 해서도 몸무게가 평소보다 3~4킬로그램이 빠지는 등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대선 패배로 인한 상실감에 오미크론 후유증까지 겹쳐 3주 정도 일상에서 벗어난 생활을 했다. 몸과 마음이 편치 않지만 그래도 무료감을 달래려고 시간과 몸이 허락하는 시간에 넷플렉스와 삼국지(민음사, 나관중 지음/이문열 편역, 1988년)를 보면서 지냈다. 넷플렉스를 보는 것보다 책을 보는 것이 훨씬 정신적인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에 가벼운 소설을 찾다가 마침 오래 전에 사놓은 10권짜리 삼국지가 있길래 보기 시작했다. 이문열씨의 정치적 성향을 좋아하지 않아 근래 들어서는 그의 책을 잘 보지 않지만 집에 있는 삼국지가 그것밖에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중국 사람들 사이에는 "젊어서는 삼국지를 읽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마라"는 말이 있다고, 이문열씨는 '삼국지를 평역하면서'라는 글에서 소개했다. 그만큼 삼국지에는 젊은이들의 용기와 포부를 길러주고, 지혜와 사려을 깊게 하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뜻이라고 그는 풀이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진징이(한국식 발음, 김경일)씨가 국내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 "젊었을 때는 서유기를 읽지 말고 늙어선 삼국지를 읽지 마라"는 중국 격언을 소개했던 것이 생각났다. 김씨는 소년기에 환상과 낭만이 넘치는 서유기를 읽으면  환상이 도를 넘게 되고, 노련하고 경험 많은 노년기에 삼국지를 손에 놓지 않으면 권모술수가 도를 넘을 것을 경계한 말이라고 소개했다. 



두 사람의 말을 합쳐 보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삼국지는 약보다 독이 된다는 뜻인데, 60대인 나에겐  다시 삼국지를 읽으면서 해보다는 득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삼국지를 읽으면서 현실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인물의 전형이 잘 전시되어 있어, 사람을 더욱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삼국지에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유비,  조조, 손권, 제갈공명 등을 비롯해 무려 1000여명의 인물들이 나온다고 한다. 사람들의 속성, 본질은 평시보다 격동기에 더욱 잘 표현된다. 삼국지에 나오는 각종 인물의 전형이 잘 표현된 것도 시대적 배경이 후한 말의 정권 변동기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덕성을 바탕으로 한 무위의 정치, 도가 내지 유가 식 정치로 한의 정통을 회복하려는 유비, 냉혈한과 같은 모습으로 갖은 난관을 헤쳐가면서 한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법가적인 조조, 수성의 대가답게 촉과 위의 세력관계를 보면서 자신의 이익을 지켜가는 손권, 삼분천하론을 내세우며 삼고초려로 자신을 기용한 유비에게 죽을 때까지 모든 지혜와 마음을 다 바치는 제갈공명, 배신과 포악함을 대표하는 동탁, 여포 등등. 



사실 이런 인물상은 시대 배경을 달리하면서 계속 변형된 형태로 출몰한다. 삼국지의 위대함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인물들을 소설 속에 나오는 수많은 전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이번에 삼국지를 읽으면서 새삼 느꼈다.



한국의 대통령선거도 어떤 면에서 보면, 후한의 정권변동기와 같은 속성을 지닌다. 즉,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나도 이번 대선을 통해 그동안 가려져 있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을 보면서는 상처도 받고 또 다른 사람을 보면서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좋았다 나빴다라기 보다는, 그를 통해서 나의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진 것이 의미가 있었다고나 할까. 



이번에 삼국지를 읽으면서 내내 '그 사람은 삼국지의 누구와 비슷할까'를 나름대로 생각해봤다. 윤석열 후보는 동탁일까, 조조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유비일까, 손권일까? 이재명 후보는, 이낙연은, 안철수는 과연 삼국지의 어떤 인물과 비슷할까? 물론 때와 장소, 무대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등장인물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몇 사람의 속성이 합쳐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은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많은 사람들을 진단하고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이것이 이번 오미크론 투병 기간 동안에 내가 삼국지를 읽으면서 얻은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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