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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May 09. 2022

한국 신문이 퇴보하는 이유

<기사의 품질>, 좋은 저널리즘 연구 모임, 전국지, 신문 기사

뉴스를 전하는 각종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종이 신문에 대한 신뢰 저하가 가장 심하다. 가히 '징벌적 수준'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한 신문 저널리즘의 위기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선진국도 마찬가지 경향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저명한 언론인들이 모여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위원회 The Committee of Concerned Journalism(CCJ)'라는 모임을 만들어 논의를 했다. 이 위원회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그 결실이 매릴랜드대학 저널리즘 스쿨과 손잡고 벌이는 '우수 저널리즘을 위한 프로젝트 The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PEJ)'다. 

한국에서도 언론학 교수 몇몇이 2016년 여름 미국의 이런 문제의식과 행동에 발맞추어 '좋은 저널리즘을 위한 연구 모임'을 발족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연세대의 김영석, 김경모 교수, 이화여대의 이재경 교수, 숙명여대의 배정근 교수, 고대대의 박재영, 김민환 교수가 그들이다. 

이들이 모임의 첫 성과로 낸 책이 <기사의 품질>(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18년 5월)이다. 이들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10개 전국 종합지를 대상으로 미국의 PEJ 방식에 준하는 지수를 만들어 평가를 했다. 우리나라 신문만 평가하면 선진국과 수준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더타임스>, 일본의 <아사히신문>과 함께 비교했다.우리나라 신문을 같은 시기의 외국의 신문과 동시에 비교한 연구는 이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비교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신문 기사의 질이 이들 외국 신문에 비해 얼마나 참담한 수준에 있는지를 금세 알 수 있다. 미국, 영국, 일본 세 나라의 대표 신문과 비교할 때 거의 모든 분야에서 뒤처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PEJ 지수만 살펴봐도 '투명 취재원' 기준에서 우리나라 신문은 평균 2.6개였지만 <뉴욕타임스>는 3배가 넘는 8.4개였다. 기사에 인용된 '이해 당사자' 수도  우리나라 신문은 2.6개, <뉴욕타임스>는 7.7개였다. 단순히 이런 기준만 봐도 우리나라 신문이 <뉴욕타임스>에 비해 3배 이상  질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뉴욕타임스>가 세계 최고의 신문이니 만큼  그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올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런 수치는 일반 상품으로 치면 진열대에 내놓을 없는 정도의 저품질 상품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신문 기사의 수준은 같은 방식으로 연구한 선행 연구와 비교해서도 퇴보한 경우가 많았다. 한 사람의 말에만 의존해서 쓰는 '완전히 단일 관점'의 기사가 이전 조사보다 크게 늘었다. 1990~2007년 조사에서 28.3%, 2003년~2010년 조사에서 34.7%를 차지했던 '완전히 단일 관점' 기사가 이번에는 59.9%로 증가했다. '이해 당사자 수'와 '익명 취재원의 부정적 인용' '무주체 피동형 문장'의 기준에서도 후퇴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신문 기사에서는일상적으로 쓰이지만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만의 일탈적 행태'도 확인됐다. 진중권씨의 발언을 바로 제목으로 사용하는 식의 '제목의 직접 인용구 사용', 발화 주체가 없는 "~알려졌다"와 같은 '무주체 피동형 문장', 다른 익명의 취재원의 비판적 언급을 그대로 사용하는 '익명의 부정적 인용', 기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담은 "격분했다"는 식의 '인용구의 주관적 술어 사용'이 대표적이다. 이런 관행은 외국의 신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 우리나라 신문은 외국의 신문과 비교할 때 현격한 차이를 보였지만, 국내 신문들 사이에서는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서로 비슷비슷하게 저품질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배정근 교수는 이 책에 실린 '한국 신문의 현실과 미래'라는 글에서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한국 기사의 품질은 글로벌 기준에서 상당히 낙후된 수준이며, 과거에 비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는 양상이다. 또한 국제 기준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한국만의 부정적 보도 관행들이 여전하고, 신문사 간에 품질의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요약했다.

문제는 이런 질 저하 상태를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있다. 신문은 신뢰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 언론을 선도하고 있으며,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많은 뉴스의 원천 재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더욱 중요한 것은 신문 기사의 품질은 그 나라의 언론 수준을 결정하고, 그 나라의 언론 수준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이재경 교수는 이 책의 에필로그로 쓴 '언론의 수준이 민주주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책 발간 배경를 밝혔다.

"<기사의 품질 : 한국 일간지와 해외 유력지 비교연구>는 한국 저널리즘 생태계에 건강한 자극이 되길르 바라는 희망에서 기획됐다.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들과 에디터들에게는 잠시라도 자신들의 일을 성찰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또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고 있는일반 지식인과 시민들에게는 한국 저널리즘의 현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더 나은 저널리즘으로의 방향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우리나라 신문의 품질 저하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부 언론학자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반면 이런 문제제기를 전혀 수용하지 않고 나쁜 관행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저널리즘 현장의 모습은 절망적이다. 그래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좌절하지 말고 신문 기사의 품질 향상을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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