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발언
20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일본계 미국인 학자, 마나베 슈쿠로 프린스턴대 선임연구원이 6일 미국에서 열린 기자회견 및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본을 떠난 이유, 일본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일본 전역에서 그의 노벨상 수상을 거국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와 아주 어긋나는 발언이다.
그는 일본에서 대학원(도쿄대)까지 졸업한 뒤 1958년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 활동을 하다가 97년부터 2001년까지 일시 귀국했다. 귀국해서는 과학기술청 지구온난화 예측연구분과장을 맡았는데, 결국 일본의 부처이기주의 행정을 비판하며 "미국에 오래 살던 나는 적임자가 아니다"며 사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때의 발언으로도 일본사회에 대한 그의 불만을 감지할 수 있지만,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열린 기자회견 및 인터뷰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밝혔다.
우선 <아사히신문> 기자의 인터뷰에서 한 그의 발언 내용을 길지만 그대로 옮긴다.
"일본에서는 항상 서로의 일을 걱정한다. 특히 조화 있는 관계성, 사람끼리 서로 잘 사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일본사람이 예스라고 말해도 그것은 반드시 예스를 의미하지 않는다. 노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실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해도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미국에서 생활은 아주 훌륭하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나 같은 연구자가 하고 싶은 일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사용하고 싶은 컴퓨터,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조화 속에서 사는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내가 일본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다."
길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주위의 눈, 조화를 원하는 사회적 압력,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의 태도 등 때문에 자유롭게 연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일본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답변을 했다. 되도록 겹치지 않게 발췌했다.
"일본의 연구는 호기심에 기초한 것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연구자가 연구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상사가 정말 관대해, 하고 싶은 일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해줬다. 컴퓨터 등을 쓰는 비용을 모두 해결해주었다. 나는 인생에서 한 번도 연구계획서를 쓴 적이 없다."
이런 얘기는 점차 대학까지 신자유주가 침투해, 투입/효율로 재단하는 학문 풍토가 정착한 한국에서도 경청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다.
그는 '일본에 대한 메시지'를 묻는 질문에도 아주 신랄하게 답변했다.
"답변이 될지 모르지만, 일본 정부의 정책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이 어떻게 정치가에 전달되고 있는가. 정치에 대한 조언 시스템이, 일본은 어려운 문제가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예를 들어, 일본의 학술회의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는가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학자가 정부의 행동을 조언하는가. 여러 학자가 여러 의견을 가지고 있어도 정부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것이 나의 질문이다."
" 미국은 지적을 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미국의 과학아카데미, 나의 의견으로는 일본보다도 아주 다양한 의견을 밑으로부터, 학자로부터 위로 올리는 것. 일본보다는그런 의미에서도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런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최근 일본 정부가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했다든가, 학술회의 임명 과정에서 정부와 다른 의견을 배제한 일을 생각나게 하는 발언이다.
그뿐이 아니다. 2020년 봉준호 감독과 함께 아카데미상에서 분장상을 탄 가즈 히로도 그가 일본을 떠난 이유를 밝혔는데, 마나베와 비슷했다. 가즈 히로는 수상 전후 일본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일본은 위압적인 분위기이 않은가.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어떻게 보여지는가, 전부 주위뿐이다. 거기서 움직이지 않으면 갈등이 일어나 정신질환에 걸린다. 결국 내 인생인데, 주위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므로, 거기서 적응하지 않고,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본을 떠나 미국적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한국사회도 반성할 점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위에 신경을 써야 하는 분위기에서는 일본보다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호기심과 개성을 살리지 못하는 풍토는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세계 제1급의 학자와 예술가는 일본의 질식하는 듯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조국을 떠났다. 그런데도 그 조국은 그들이 일본 출신임을 내세우며 '일본의 영광'을 선전하기에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