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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ug 22. 2022

박정희 시대의 추악함'을 낱낱이 비춰주는 거울

프레이저 보고서, 유신독재, 미국, 금서

아베 신조 총리의 암살과 함께 일본 사회에서 뜨거운 화제로 떠오른 조직이 '통일교'다. 통일교와 극우보수 성향 정치인들과 유착, 신도를 대상으로 영계에서 고통받는 조상을 구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물품을 고가에 판매해 사회문제가 된 '영감상법'이 재차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통일교가 중앙정보부(KCIA)와 긴밀한 연계를 맺고 활동한 전력도 들춰지고 있다.

마침 통일교는 "KCIA의 지원을 받아 설립되어, 당시 한국 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직이었다고 규정한 미 하원 조사위원회의 보고가 있었다"는 한 일본 평론가의 글을 읽으면서, 유신독재 시대에 금기시됐던 '프레이저 보고서'가 문득 떠올랐다. 그 보고서를 보면 통일교 문제를 좀더 깊이 알 수 있을 것 같아 집 근처 도서관의 책을 검색해봤다. 근처 도서관에는 없고 다른 도서관에 있는 것으로 나와 대차대출을 신청했다. 대차대출은 다른 도서관의 책을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제도인데, 3일 만에 책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도서관에 가니 '한국 현대사와 박정희 시대에 대한 가장 완벽한 평가서'라는 부제가 붙은 <프레이저 보고서-악당들의 시대>(레드북,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 지음, 김병년 옮김, 2014년 2월)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려 677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책이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이 보고서를 만든 국제기구소위원회 위원장이 도널드 프레이지 의원(미네소타 출신)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프레이저 소위는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의 인권 탄압과 불법적인 방법으로 미국의 환심을 사려는 공작이 계기가 되어 활동을 시작했지만, 소위는 박정희 시대에만 한정하지 않고 1945년 이후 조사 시점까지 한국과 미국의 안보, 정무, 경제, 교육, 문화, 정보활동 등 전반적인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뤘다. 한국의 현대사의 상당 부분이 한미 관계사라고 할 수 있으니, 이 책의 부제에 붙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가장 완벽한 평가서'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 책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해방 이후 미국은 "안정적이며 군사적으로 강력하며, 친미적인 정부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필수적이라는 믿음에 기초"하여 한국을 전면적으로 지원했다. 1961년 박정희 장군이 쿠데다로 집권했을 때, 미국은 여순반란 사건과 관련해 사형선고까지 받은 전력이 있는 그의 성향에 의문을 표시하며 주저했지만 한일관계 개선과 한국군의 월남전 파병 등을 통해 점차 신뢰를 회복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했다.

미국과 박 정권의 본격적인 갈등은 1960대 말에 찾아온다. 68년에 31명의 무장간첩이 청와대 코밑까지 침투하는 1.21사태가 발행하고 일주일 뒤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납치됐다. 이때 박 정권은 미국에 강력한 응징 보복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둘 다 단호하게 거부했다. 박정희는 이때 북한의 도발에 미온적인 미국의 태도에 매우 격앙했다.

한미 사이에 이런 엇박자가 나온 것은 정세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박 정권은 남북대결이라는 시각에서 북한의 도발을 바라봤지만, 미국은 북한의 도발을 베트남전쟁과 연결해 분석했다. 북한의 도발을 베트남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끌어내려는 시도로 봤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지 않았는데, 박 정권은 이런 미국의 평가와 움직임에 동의하지 않고 반발했다.

1969년 7월 25일 괌을 방문했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의 손으로" 요약할 수 있는 닉슨 독토린을 발표했다. 수렁에 빠져 있는 베트남전쟁에서 철군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닉슨 독트린은 68년 북한의 잇딴 도발로 좌불안석이던 박 정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박 정권은 미국 정치가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와 여론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중시하고 미국 의회와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한 여론 공작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런 과정에서 터진 사건이 박동선 게이트이고, 통일교 사건이다. 프레이저 소위는 한국 정부와 통일교의 조직적인 비협조와 방해 속에서도 미국의 28개 주와 11개 국가에서 1563건의 인터뷰를 실시했고, 123건의 소환 및 수천 종의 문서를 검토했다. 선서를 한 37명의 증인들이 참석한 청문회도 20차례 개최했다. 이런 방대한 작업을 통해 나온 책이 바로 프레이저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나의 애초 관심사였던 통일교 문제와 관련해 무려 116페이지를 할애해 서술하고 있다. 거의 책의 5분 1 분량이다. 이 보고서는 통일교 문제를 <특별쟁점>이라는 항목을 따로 설정해 다루고 있는데, 통일교가 아니라 '문선명 조직'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그 용어에는 문선명의 활동 범위가 종교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광범위하게 연결돼 있고 그 중심에 문선명이 있다는 뜻을 내포돼 있다.

문선명 조직과 관련한 내용이 워낙 방대하므로 이 부분에서 나오는 주요 고유명사들만 발췌해 적어보겠다. 통일교회, 국제승공연합, 자유지도자재단, 국제문화재단, 통일교세계재단, 한국문화자유재단, 자유아시아방송, 통일산업주식회사, 일화제약주식회사, 일신석재(주), 리틀앤젤스, 뉴스월드, 디플로매틱 내셔날 뱅크, 원웨이프로덕션, 인터내셔날 오셔닉 엔터프라이즈, 인터내셔날 시푸트 Co, 문선명, 박보희, 타케루 카미야마, 닐 살로넨, 이준구, 다이콘 오누키 등등.

이 보고서는 통일교와 박정희 정권, 중앙정보부와 관계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한국문화자유재단 회장이었던 박보희가 리틀앤젤스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문선명과 박정희 정권의 선전 도구를 활용됐다는 사실을 비롯해, 통일산업이  M-16 소총 특허 계약과 수출 허가를 얻기 위해 관여한 일,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씨 피살 이후 미국 일본대사관 앞에서 통일교가 국정원과 연계해 시위를 조직한 일 등을 적고 있다. 특히, 중앙정보부의 창설자인 김종필과 문선명 및 통일교와 관련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로 워싱턴 미국대사관 무관이었던 박보희가 김종필의 방미 때 수행했던 사실, 김종필의 정보부장 시절 비서와 보좌관에 군인 출신의 젊은 통일교 신자로 채운 사실도 나온다. 

통일교는 1954년 설립되고 중앙정보부는 1961년 창설된 사실에 비춰보면, 통일교가 중앙정보부의 지원으로 설립됐다는 것은 연대기적으로 맞지 않다. 하지만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통일교의 급속한 발전 과정을 보면, 사실상 정보부의 지원와 연계로 통일교가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통일교는 63년 5월 31일에야 비로소 정부에 종교단체로 등록이 됐다. 당시 소관부서인 문교부가 등록을 반대했으나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으로 바로 번복됐다. 통일교는 김종필을 비롯한 박정희 정권의 실력자들의 지원 속에서 국제적인 세 확장을 가속했다.  통일교는 교주인 문선명이 숨진 뒤에도 그전만은 못하지만 계속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보고서의 곁다리로 취급한 것 중에서 눈에 확 띄는 내용도 있다. 하나는 이 조사와 관련한 일본의 태도다. 많은 일본의 의원들과 언론인들은 프레이저 소위에 한미관계에만 한정하지 말고 한일관계의 악행도 파헤쳐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김대중 납치사건의 조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소위는 권한 밖의 일이라며 조사하지 않았다. 이때 소위가 김대중 납치사건을 조사했다면, 명확한 진상이 드러날 가능성이 컸을 텐데 아쉽다.

또 한 가지는 미국의 대북특별대표 성 김 아버지와 관련된 내용이다. 보고서는 마지막 부분에 성 김의 아버지 김기완(김대중 납치 당시 중앙정보부 일본지부장, 당시 가명 김재권)을 조사하지 못한 아쉬움을 적어놨다. 김형욱이 소위 증언에서 김대중 납치 사건에 관여한 정보부 관계자로 김기완과 몇 명을 거명한 터였고, 소위는 그가 중앙정보부의 미국 관리 등에 대한 로비활동을 알고 있을 만한 신뢰성 있는 이유를 확보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김기완이 김대중 납치사건 후 수개월 만에 미국에 거주하려고 건너왔다는 걸 알았다. <중략> 본 소위 조사위원들은 김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김형욱과 마찬가지로 2백만 달러가 넘는 재산을 축적했고, 그 중 일부는 남부 캘리포니아 부동산에 투자한 것을 알아냈다. 그의 부의 원천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그는 78년 초 소위의 심문을 피하기 위해 한국으로 출국해 조사가 끝날 때까지 미국에 오지 않았다. 아마 당시 소위는 그의 아들이 미국의 고위 외교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이런 사실을 기록해 놨을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이후락, 김형욱, 김성곤, 정일권, 박종규 등 박정희 정권의 측근 인사들의 활동과 알력이 곳곳에서 나온다. 그들은 박정희를 위해, 때로는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해 악행을 밥 먹듯이 벌인 악당들이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을 <프레이저 보고서-악당들의 시대>라고 단 것은 매우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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