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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Sep 22. 2022

윤석열-기시다 한일 첫 약식회담이 우려되는 이유

한일 첫 정상회담, 강제동원, 굴욕, 참사, 뉴욕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우여곡절 끝에 미국 뉴욕에서 잠시 만났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21일 낮(미국 현지시각) 두 정상의 만남이 끝난 뒤 낸 서면 브리핑에서 "21일 낮 12시 23분부터 30분간 유엔 총회장 인근 한 콘퍼런스빌딩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약식회담을 갖고,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회담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번째 한일 정상 간 약식회담"이라고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일본 외무성은 이번 회담의 성격을 '간담(懇談)'이라고 발표했다.



대통령실이 회담 형식을 약식회담으로 규정하면서 굳이 '첫 번째'를 강조한 것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먼저 마셔버린' 대통령실의 실수를 조금이라도 가리자는 뜻으로 읽힌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 15일 윤 대통령의 순방일정을 설명하면서 한일 양국이 정상회담을 하기로 흔쾌히 합의해 놓고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일본 쪽이 일방적 발표에 강력히 항의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부인하고, 기시다 총리도 "그렇다면 반대로 만나지 않겠다"(<아사히신문> 보도)라고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한때 회담 무산설이 나올 정도였다.



대통령실은 일본이 이처럼 강하게 반발하고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양국의 합의사항을 먼저 미디어에 흘려 보도하게 하는 쪽은 주로 일본 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상회담 일정을 어느 일방이 합의도 없이 발표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항의를 받을 만한 일에 틀림없다.



일본이 정상회담 사전 발표에 강하게 반발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선 한국 쪽의 발표자가 너무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일본 쪽은 얼굴을 가리고 교묘하게 합의사실을 흘리기 때문에 항의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한국은 누가 '파울'을 했는지가 분명하게 보이게 파울을 했다. 서투른 언행으로 항의를 자초한 셈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대국 의식도 작용했다고 본다. 겉으로 표시는 않지만 일본의 정치인과 관료들은 한때 식민지로 통치했던 한국이 자신들에게 대등하게 맞서려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일본의 고노 다로 외상이 강제노동 문제와 관련해 2019년 7월 남관표 대사를 불러 얘기를 하던 도중 남 대사의 말을 중간에 끊고 '무례' 운운의 말을 태연하게 내뱉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일본이 이번에 고강도로 강하게 반발한 진짜 이유는 윤 대통령과 윤 정부에 대한 기선 제압,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의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쪽의 이런 의도를 반영하듯, 회담 형식에 관해 한국 쪽이 약식회담으로 규정한 데 반해 일본 쪽은 간담(懇談)이라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만남도 기시다 총리가 참석했던 회의 장소에서 윤 대통령이 찾아가 찾아가 비공개로 이뤄졌다. 누가 배석했는지도 바로 공개되지 않았고 회담 사진도 서서 악수하는 사진 한 장만 배포됐다. '굴욕'이나 '참사'로 표현돼도 과장이 아닌 양국 정상의 만남 모습이다.



이런 일본 쪽의 고압적인 태도는 그들이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에 관한 생각을 너무 잘 읽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전 정권과 달리, 대북과 대중 문제에서 일본과 거의 생각이 일치한다. 또한 그동안의 한국 정부들이 꺼리던 한일 안보협력까지 적극적으로 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면 강제동원 노동 문제를 포함한 과거사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다. 그러니까 일본으로서는 마음 놓고 윤 대통령에게 과거사 한 문제만 집중 공략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질 법하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박근혜, 문재인 전임 두 대통령과 달리 과거사 문제에서 원칙을 고수하기보다 정치적 타협을 우선시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정치적 타협을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해 강공을 취하는 전략을 택했고, 이런 모습이 이번 뉴욕 회담 논란에 그대로 투영됐다고 할 수 있다.



두 정상의 만남에서 초미의 관심사인 강제동원 노동 문제는 '현안'이라는 말로 등장했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양 정상은 현안을 해결해 양국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위해 외교 당국간 대화를 가속화할 것을 외교 당국에 지시하는 동시에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가속화'라는 단어가 눈에 거슬린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때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2015년 11월 2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차에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양자회담을 하고 위안부 문제 해결에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양쪽 외교당국이 이런 수뇌의 뜻에 따라 한 달여 뒤인 12월 28일 문제의 '위안부 합의'를 서둘러 타결했다. 그 이후 '12.28 위안부 합의'가 어떤 파장을 낳았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일본에 사정사정하고 밀려서 겨우 이뤄진 뉴욕의 '9.21 한일 약식 정상회담'과 '가속화'라는 단어 사용이 12.28 위안부 합의의 뼈아픈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omn.kr/20t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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