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 중국 드라마, 감상문
요즘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오티티(OTT, Over The Top)에 푹 빠져 있다. 코로나 감염 여파로 밖에 나돌아다니지 못하게 된 것을 계기로 맛을 들였다가, 프로그램 하나가 다른 프로그램의 꼬리를 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됐다.
중국 드라마 <사마의> 시리즈를 보게 된 것은 역시 중드 <삼국지> 95편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지인들과 만나 삼국지 드라마를 본 얘기를 나누던 중 "사마의도 봤느냐, 사마의도 아주 흥미진진하다"는 평을 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오티티 계정은 넷플렉스뿐인데 검색을 해보니 사마의 시리즈는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오티티(티빙)를 계약해, 9월 18일부터 10월 8일까지 20일 동안 사마의 시리즈를 모두 봤다. 1부가 <사마의 : 미완의 책사> 42편, 2부가 <사마의 2 : 최후의 승자> 44편이다. 한 편의 길이는 대략 45~6분 정도다.
사마의는 위, 촉, 오 삼국 가운데 조씨 가문이 이끄는 위나라의 책사다. 유비가 세운 촉나라의 제갈량(공명)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사마의는 삼국 중에서 위나라와 사마의 가문에 초점을 두고 만든 드라마다. 쉽게 말하면, 위나라와 사마의 중심으로 바라본 삼국지라고 할 수 있다.
사마의는 조조(조무제)에게 발탁된 뒤 조비(조문제)-조예(조명제)와 조방까지 4명의 위나라 왕을 모셨다. 네 명의 왕을 보필하며 사마의가 어떻게 생명을 부지하고 마지막에 천하 대권까지 거머쥐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1부 <사마의 : 미완의 책사>에서는 조조가 애지중지하는 3남 조식과, 사마의가 미는 차남 조비의 후계 싸움이 볼 만하다. 사마의는 성정이 거칠고 투박한 조비의 책사를 맡아, 재기가 번뜩이는 인물인 조식과 그의 모사 양수와 대결한다. 이 대결에서 사마의는 양수를 누르고 조비를 태자로 옹립하는 데 성공한다. 사마의는 양수와 지략에서는 비슷한 수준이지만 허허실실로 양수를 제압한다.
2부 <사마의 2 : 최후의 승자> 전반부는 사마의와 제갈량의 지략 대결이 중심을 이루고, 후반부에는 사마의 가문과 조씨 가문의 치열한 권력 다툼이 전개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마의가 아들 사마사, 사마소와 함께 대장군 조상을 제거하는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사실상 대권을 장악한다. 사마의의 손자(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우고 삼국을 통일하는 것까지는 나오지 않지만, 사마의의 쿠데타가 곧 사마 가문이 신하의 자리에서 왕의 자리로 오르는 기점이 된다.
이 드라마는 사마의를 보는 나의 눈을 완전히 바꿔놨다. 나는 그동안 사마의를 '사공명 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이라는 고사에 나오는 것처럼 우둔한 인물 또는 별 볼 일 없는 인물로 생각해왔다. '죽은 공명을 산 공명으로 착각해 도망하는 어리석은 자' 정도로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니, 사마의는 제갈량과 필적하는 지략과 능력의 소유자였다. 다만 그 능력을 숨기고 완급을 조절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제갈량도 그의 역량을 잘 알아보고 그를 전장에 끌어내기 위해 갖은 도발을 하지만, 그는 상대의 강약점을 잘 간파하며 대응했다. 결국 지구전으로 속공을 꾀하는 제갈량을 물리친다.
제갈량은 집념이 강하고 지략이 뛰어나고 병사도 빈틈없이 부리는 능력을 지녔지만, 사마의만큼 인내력은 없었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심지어 여자 치마를 보내며 싸움에 응하지 않는 태도를 능멸했지만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인내"라며 끝내 제갈량의 도발에 응하지 않았다. 물론, 사마의의 인내는 제갈량의 군량이 떨어지고 제갈량이 나이가 들어 노쇠해진데다 형주세력인 이엄과 내부 갈등이 있는 것을 염두에 둔 전략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모욕을 극한까지 참아낸다는 것은 보통 능력이 아니다.
사마의가 제갈량과 싸움에서도 그랬지만, 조정 내부에서 조씨 가문과 싸움에서도 인내력을 과시했다. 상대의 공격을 노회하게 받아치며 시간을 벌었다. 그 시간에 그는 민심, 조정 대신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일격의 반격 기회가 오자 "이제까지는 남의 칼 노릇을 했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칼을 휘두르겠다"는 말과 함께 가차 없는 행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위나라 권력을 장악했고, 사마 가문의 왕국을 개척했다. 인내와 민심, 결단력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중에서 몇 차례 사마의에 대한 인물평이 나온다. "속이 너무 깊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셈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속셈을 알 수 없다'는 인물평은 그가 당시 난무했던 온갖 권모술수에도 걸려들지 않는 신중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모르지만 당시의 처세로서는 '속셈을 알 수 없다'는 게 매우 좋은 정치인의 자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속셈을 알 수 없다는 평가보다 '속이 너무 깊다'는 말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너무도 쉽게 말하고 경박하게 행동하는 요즘 정치 지도자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사마의가 우리가 100% 본 받아야 할 인물의 전범은 아니지만 지금의 경박한 풍토에 큰 경종을 울려주는 인물임은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