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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5. 2022

우리나라에만 있는 '대기자(大記者)'라는 호칭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큰 기자'라는 뜻의 '대기자(大記者)'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 같다. 영어사전이나 일본어사전을 찾아봐도 이런 뜻의 대기자는 나오지 않는다.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대기자(待機者, awaiter)만이 나올 뿐이다. 그래서 미디어계에서는 대기자(大記者)의 대부분이 정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대기자(大記者)=대기자(待機者, awaiter)'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오는 것 같다.


표준 국어대사전에는 대기자를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로서의 기자"라고 풀이해 놓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미디어는 대기자 말고도 전문기자, 선임기자라는 호칭도 쓰고 있다. 이것을 보면, 우리나라 미디어들은 국어사전의 풀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대기자라는 호칭을 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기자의 호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직책에 따른 호칭이다.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 논설실장, 편집인, 주필 등이 직책의 이름이다. 또 하나는 쓰는 분야나 기능에 따른 호칭이다. 기자, 논설위원, 칼럼니스트 등이 그런 이름이다.


그런데 대략 20여 년 전부터 글 쓰는 기자들을 서열화 내지 세분화하는 명칭이 등장했다. 대기자, 선임기자, 전문기자가 그런 호칭이다. 그래도 이 중에서 가장 그럴 듯한 호칭이 전문기자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대중매체가 살아남으려면 기자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오면서 각 매체가 의사나 변호사 출신을 전문기자로 영입하거나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취재하면서 전문성을 키워온 기자에게 전문기자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선임기자와 대기자는 이런 전문성 강화 차원의 움직임과는 다른 맥락에서 등장했다. 부장, 국장, 편집인 등 직책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보직을 맡을 수 있는 고참 기자들은 점차 쌓이고 있는 병목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선임기자다. 대기자는 편집국장, 논설실장, 편집인 등을 지낸 거물급 기자에게 더욱 큰 보직을 맡길 수 없을 때 예우 차원에서 부여한 호칭으로 보면 된다.


나는 이 중에서 대기자라는 명칭이 제일 눈에 거슬린다. 그가 기사를 잘 쓰는 큰 기자인지, 아니면 별 볼 일 없는 기사를 쓰는 기자인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독자이지 그 기자나 그 기자가 속한 회사가 아니다. 회사나 기자가 스스로 자기 이름 뒤에 '아무개 대기자'라고 쓰는 것은 독자에게 판단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기자가 대기자 답지 않은 기사를 썼는데도 대기자가 썼으니 믿어달라고 윽박지르는 꼴이다. 이런 점에서 대기자라는 명칭은 전혀 '독자 친화적'이지도 겸손하지도 않다.


내가 지금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이런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어느 미디어 회사에 속해 있는 처지였다면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칫 구체적인 사람에게 화살을 날리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기자라는 영광스런 호칭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투정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간단하다. '대기자'건, '선임기자'건, '전문기자'건 호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쓰는 기사의 내용이 중요하고, 그들이 쓴 기사가 '대기자답다' '선임기자답다' '전문기자답다'라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주체는 독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 회사 내부의 서열이나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기자 호칭은 내부용으로만 쓰고, 기사 뒤에는 담담하게 '아무개 기자'라고만 쓰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대기자를 비롯한 현재 고참기자를 부르는 몇 몇 호칭은 회사 내부의 인력 관리 차원에서 쓰면 좋은 것을 굳이 밖으로 내놓고 자랑하는 허장성세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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