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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Nov 14. 2022

일본의 쇠락은 과연 한국의 행복인가?

피크재팬, 일본경제, 경제력, 국제적 영향력

최근 들어 일본의 경제력 쇠퇴와 함께 국제적인 영향력 저하를 다루는 책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본 밖에서 <Japan as No1.>(에즈라 보겔 지음)과 같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일본 안에서도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시하라 신타로, 모리타 아키오 공저)과 같은 책을 내며 으시대던 1970대, 1980년대 일본 경제의 전성기 때와는 상전벽해의 상황이다.


<피크 재팬>(김영사, 브래드 글로서먼 지음, 김성훈 옮김, 2021년 1월)도 크게 보면, 일본의 쇠락을 다룬 부류에 속한다. 미국 사람으로서 일본을 오래 관찰하고 연구해온 저자가 2019년 4월 미국 조지타운대 출판부에서 영어로 출판한 <Peak Japan-The end of Great Ambitions>를 번역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은 어떤 면에서 요시미 슌야 도쿄대 교수의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짝을 이루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두 책이 다루는 시기가 비슷하다. 요시미 교수가 1989년부터 2019년까지 아키히토 천황이 재위했던 헤이세이 30년을 확실하게 구획지어 다뤘다면, 글로서먼은 그렇게 엄격하게 시기를 한정하지는 않고 있지만 헤이세이 시대 중, 후반기의 주요 사건을 통해 일본의 쇠퇴를 분석했다.


또 요시미 교수가 내부자의 시선으로 일본의 문제를 바라봤다면, 글로서먼은 외부자의 시각으로 일본이 당면한 문제를 관찰하고 분석했다. 따라서 일본과 얽힌 역사적인 악연 때문에  일본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기 힘든 한국 사람들에게, 글로서먼의 시각은 '등신대의 모습'으로 일본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교정자 노릇을 해주는 면이 있다. 나는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글로서먼은 1991년 <마이니치신문> 기자로 처음 일본에 체류한 이래 <재팬타임스> 논설위원, 다마대학교 룰형성전략연구소 부소장 겸 객원교수, 하와이에 있는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퍼시픽포럼 선임고문을 지내며 일본 전반을 폭넓고 깊게 관찰해왔다. 더구나 그가 일본에 온 시점이 거품경제가 꺼진 시기, 즉 일본의 장기불황이 시작된 때와 일치한다. 일본의 쇠락 과정을 가장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쭉 있었던 셈이니, 이 책은 그가 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주제인 듯하다.


나는 일본과 관련한 책이 어떤 것이 나왔는지, 그리고 어떤 책이 잘 팔리는지 가끔 검색을 해본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 책이 늘상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꼭 읽어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이 책은 헤이세이 중, 후반기에 일어난 4가지의 충격적인 사건-2007~8년의 리먼 쇼크, 2009년부터 3년간 민주당 집권 시기의 정치 쇼크,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 이름, 댜오위다오) 국유화를 둘러싸고 일어난 센카쿠 쇼크, 2011년 3월 11일 지진, 해일, 원전 사고의 3중 재난을 불러온 동일본 대지진 쇼크-을 통해 일본의 쇠퇴 과정을 살펴본다. 이 중에서도 3중 재난을 불러온 동일본대지진은 일본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정도의 심대한 쇼크를 일본 사회에 줬다. 저자도 3중 재난을 불러일으킨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리먼 쇼크가 일본 정책결정자들의 경제 개혁 능력을 관찰하는 창이라면, 정치 쇼크는 정치 지도자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도력을 보는 창이다. 저자는 리먼 쇼크가 일본에 크게 충격을 준 것은 정책 결정자들이 일본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인 엄청난 공공부채, 저출산 고령화, 과잉설비,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을 해결하지 못하고 머뭇거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일본 지배층의 이러한 무력, 무능에 질린 유권자가  2009년 처음으로 집권당을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꿔버렸다. 하지만 준비 부족 상태에서 정권을 떠맡은 민주당은 내정과 외정에서 역량 부족을 드러내며 자멸하다시피했다. 저자는 이를 정치 쇼크라고 표현했다.


민주당 정권 때 일어난 2010년 센카쿠 쇼크는 중국의 부상과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일본의 외교안보 정책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이 해는 중국이 처음으로 경제력에서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제2의 강국으로 부상했으며, 센카쿠 열도가 이런 힘의 변동을 보여주는 실험대로 떠올랐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 변화에 맞추어 외교 정책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맸다. 즉, 아시아와 서구 사이에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느냐를 두고 결정장애에 빠졌다. 저자는 일본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과 관련해, 서구와 아시아 사이에서 어떤 좌표를 설정해야 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가 앞으로도 계속 일본을 괴롭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동일본대지진은 일본의 안전신화를 무너트리고 정부를 불신하는 결정적인 쐐기 노릇을 했다.


센카쿠 사건과 동일본 대지진 당시 마침 집권 당이었던 민주당은 두 쇼크의 영향으로 유권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과 불신을 당했고, 정권은 속절없이 다시 자민당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의기양양하게 복귀해 정권을 다시 잡은 사람이 아베 신조다. 이 책은 아베가 집권하고 있던 2018년 말 시점까지만 다루고 있다. 따라서 그가 코로나 대책에 실패하고 2020 도쿄올림픽을 1년 연기한 뒤 2020년 9월에 도망치듯 자진 사퇴한 사실도, 2022년 7월 중의원 선거 지원 유세 피격 사망한 사실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아베 총리를 싫어하면서 아베 총리에 안주하는 당시의 일본 상황을 관찰하면서, 그때를 일본의 정점이라고 규정한다. "아베 정부 시기는 일종의 막간에 해당하며, 국위를 선양하고 아시아 지역과 전 세계 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확보하려 하는 전통적인 강대국주의자가 마지막으로 애를 쓰는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아베 사퇴 이후 일본의 궤적을 보면, 저자의 통찰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는 '지구본 외교'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본격적인 강대국 외교를 펼쳤지만, 저자의 눈에는 일본의 쇠락하는 경제력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어떤 한국 학자는 아베 외교에 관해 일본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왕성할 때는 중견국 외교를 하더니 경제가 쇠퇴하는 시기에 강대국 외교로 돌아섰다고 평했는데,  이 또한 '쇠락을 감추려는, 즉 정점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일본의 모습'에 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처지에서 볼 때, 일본의 쇠락과 힘의 축소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우선 일본이 아무리 쇠락한다 해도 앞으로 상당 기간 굳건한 세계 3위의 경제력을 지닌 부국으로 남을 것이고 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다투는 강자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을 것이다. 또한 중국의 강력한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이웃 나라 일본의 쇠락은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다. 이 책 곳곳에 일본에게 한국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역으로 한국에게 일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제3의 객관적 위치에서 볼 때 한국과 일본이 정치, 사회, 경제, 외교안보 면에서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지 하는 서술이 나온다. 이 책은 세계와 아시아의 세력 구조가 크게 변동하는 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함께 또 따로'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또한 일본 경제 쇠퇴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히는 인구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앞선 경험과 대응을 엄중한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일본이 약해지는 것을, 일본과 국력 차가 줄어드는 것을 반기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한국이 일본이 겪고 있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이 긴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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