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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Nov 28. 2022

일본의 시행착오에서 배우는 저성장시대 생존전략

김현철, 잃어버린 30년, 한국경제, 황제경영

한때 두 자리 수를 넘나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한국 경제가 2010년대부터 2%대의 저성장 시대에 돌입했다. 1963년에서 1991년까지 연평균 9.5%의 성장을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이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이전의 반토막 수준인 5.1%로 떨어졌다. 2012년 이후부터는 대략 2%대 성장률이 정착됐다.

저성장은 한국 경제가 실력이 나빠서라기보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면서 나오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나라의 자원을 총 가동하여 달성할 수 있는 성장 잠재력을 밑도는 것은 문제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5%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747 공약(7%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선진국)을 내세운 것은 '혹세무민' 공약이었다. 경제 현실을 무시하고 성장지상주의에 물들어 있는 국민을 현혹해 표를 얻으려는 일종의 사기였다.

꼭 선진국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세계 경제가 과거 60~70년대에 구가했던 고성장시대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자원과 시장의 고갈로 성장 잠재력이 떨어졌고, 인간의 무절제한 개발에 대한 자연의 반발로 지구가 생존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감염병 빈발이 바로 그 징후다.

세계의 많은 학자들이 이런 환경을 급변을 계기로 앞으로 닥칠 저성장, 환경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책자를 내놓고 있다. 일본의 신진학자 사이토 코헤이(<인신세의 자본론> 저자)처럼 후기 마르크스의 생태주의에 기반한 '탈성장 코뮤니즘'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람도 있고, 성장보다 분배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저성장 새대, 기적의 생존 전략-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다산북스, 김현철 지음, 2015년 7월)는 저성장 시대에서 기업이 어떻게 생존해  갈 것인가 하는 전략을 제시하는 책이다.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 학장을 맡고 있는 김현철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경제 및 경영 전문가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보다 앞서 저성장을 경험한 일본 기업들의 시행착오를 철저히 분석해, 한국 기업들이 저성장기에 취할 구체적인 생존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기업 경영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이 책을 통해 저성장기, 고난기를 이겨내는 인생의 지혜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일본 경제는 2차대전 이후 정치인, 관료, 기업이 철의 삼각동맹을 이루며 급성장했다. 1980내 말에는 '재팬 애스 넘버 원'(Japan as No1)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이런 위세도 변화에 대한 안이한 대처와 성공 신화에 대한 과도한 믿음 속에서 이슬처럼 사라졌다. 김 교수는 최근 <삼프로티브이> 프로그램 중 최단 시일 100만 회 시청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는 인터뷰 강연 '혼돈의 일본 경제, 한국은 달랐다'에서,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과 달리 세계화와 인터넷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것이 최대의 퇴조 원인이라고 말했다. 또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일본의 '주군 경영'과 모든 것을 최고 경영자가 틀어쥐고 지휘, 지시하는 한국의 '황제 경영'의 차이가 속도와 변화를 필요로 하는 시대에 한일 기업 간의 명암을 갈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저성장기의 대응 여하에 따라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소니, 마쓰시타, 샤프, 엔이시(NEC) 등 전자기업이 어떻게 망했고, 유니크로, 도요타, 닌텐도, 일본전산 등이 어떻게 흥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 교수는 서문에서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나락에 떨어질 것인가?', '저성장이 되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되는가?', '이 시점에 한국 기업들은 저성장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리고 '나가는 말'에서 그에 대한 답을 했다. 첫째, 한국 경제도 저성장을 경험한 일본과 비슷한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와 관련한 답은 답이라기보다 일본의 문제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일본의 고성장을 이끌었던 정치, 관료, 기업이 포퓰리즘과 보신주의, 집단적 이기주의로 자기 앞가림만 하다가 저성장의 악화를 방어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셋째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책의 핵심인데, 김 교수는 이를 9가지로 정리해 제시했다. 첫째가 인식의 전환이다. 그는 인식 전환을 두 가지로 나눠 '과거처럼 정부가 어떻게 해주겠지?'라는 기대를 완전히 버려야 하고, 기업 환경, 즉 고객도 유통도 경쟁도 이전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장 전략으로 △해외 시장 진출 △기존 시장 고수 △신규 시장 개척의 세 가지 전략을 제시한다. 조직 전략으로는 △원가 혁명 △가치 혁신 △영업력 강화 △ 민첩성 강화를 주문했다.  

그는 시장 전략에서 일본 기업은 기존 시장이 굳건하게 받쳐줘야 해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데 이것을 간과하고 무작정 해외 시장으로 뛰쳐나가기만 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말했다. '아생 연후 살타'라는 바둑의 격언을 상기시켜 주는 분석이다. 그는 조직 전략에서는 원가는 상식적으로 생각해오던 수준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구조를 뜯어 고쳐야 하며, 고객 가치를 높이기 위해 조직의 기동성과 영업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조직 대응 전략은 시장 대응 전략보다 더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들므로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9번째,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생존 전략이 강력한 지도력이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희망적인 것은 한국 기업은 원래부터 '황제 경영'이라고 비아냥을 들을 만큼 지도력이 강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남겨진 시간은 별로 많지 않다. 리더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이 난국을 잘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지도자의 능력이가 중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를 끌고 가는 정치 지도자의 작태를 보면, 김 교수의 말은 기업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먼저 가슴 깊이 되새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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