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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an 01. 2023

베네딕토 16세의 선종을 계기로 다시 본 <두 교황>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 가톨릭, 콘클라베

바로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2022년 12월 31일, 95살의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 그가 위중한 상태에 있다며 기도를 해달라고 말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온 비보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생전에 교황 자리에서 물러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700여 년 전인 1294년에도 교황이 생전에 퇴임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 내용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선종을 계기로, 새해 첫날 영화 <두 교황>을 다시 봤습니다. 두 교황 사이의 교대극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데 2019년에 개봉되었습니다. 몇 달 전 네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우연하게 보게 되면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대한 기존의 인상이 크게 바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선종을 계기로 추모의 마음으로 다시 찾아서 봤습니다.


이 영화는 종교 영화라기보다 전혀 삶과 생각이 다른 두 교황이 어떻게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는지를 그린 인간 드라마입니다.


전통과 계율을 중시하고 교회 안에서 엘리트로 성장해온  보수파의 대표인 베네딕토 16세 교황(교황 전 이름, 요제프 라칭거)과, 교회가 시대변화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민과 호흡을 같이해 온 프란치스코 교황(교황 전 이름, 호르헤 베르고골리오)은 언뜻 보아 접점을 찿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하지만 둘이 만나 깊은 얘기를 들으면서 상대를 이해하게 됩니다.


베네틱토 16세 교황이 은퇴를 하기 일년 전인 2012년, 두 사람은 로마에서 만나 몇일을 같이 지냅니다. 하지만 만나는 이유는 서로 다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당시 추기경)은 추기경 은퇴를 위해 교황의 승인을 얻기 위해 베네틱토 16세에게 면담을 신청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교회가 성 추문과 금전 비리 등 위기에 봉착하자 이를 돌파할 후임자를 물색합니다. 더구나 그는 건강 이상으로 더 이상 집무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부른 것은 일종의 '면접시험' 같은 거라 보면 됩니다.


교리 해석과 선교 방식에서 물과 기름처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두 교황은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에게 가장 은밀한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을 위기에 처한 교회를 개혁할 적임자로 보는 베넥딕토 16세 교황에게 아르헨티나의 군사 정권 시절 동료를 배신한 비밀을 고백하고, 베네딕토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신부가 아동 성폭행한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한 잘못을 털어놓습니다. 둘은 각기 범한 잘못을 상대에게 고해하고 사죄를 받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상대에게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털어놓고 고행성사를 하며 신뢰를 쌓습니다.


이런 신뢰가 곧 베넥딕토 16세의 생전 퇴위와,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남미 출신이자 가장 개혁적인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극으로 이어집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시스타나성당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화하면서 "당신이 추기경을 사임하려면 내 허가가 필요하지만 내가 교황을 사임하려면 당신의 (차기 교황에 나서겠다는) 승락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둘 간의 짧지만 밀도 높은 대화를 통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차기 교황으로 점 찍는 장면입니다.


이 영화에서 두 교황 역을 맡은 배우(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안쏘니 홉킨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나단 프라이스 역)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실제 내용이 그러하기 때문에 더욱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에서 독재 시절과 그 이후 찾아온 민주화 시대에 사목을 하면서 겪은 갈등과 아픔은 마치 한국의 역사를 보는 듯해,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그동안 신문, 방송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없었던 콘클라베(교황 뽑는 선거)의 내부 모습을 알게 된 것도 망외의 소득입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상대를 박멸해야 할 적으로 보는 한국의 정치권을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여야가 가지고 있는 차이는 가톨릭 안의 개혁파와 보수파의 차이보다 작으면 작지 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여야 정치권은 서로를 상종하지 못할 상대로 보면서 못잡아 먹어 안달인 듯합니다. 영화 <두 교황>은 상대의 말을 듣는 것, 대화하는 것, 이해하는 것,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아마 두 교황이 그런 차이를 넉넉하게 극복할 수 있는 큰 그릇이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탄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도 이 영화를 보면 무언가 크게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을 계기로 영화 <두 교황>을 다시 보면서,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두 교황의 메시지가 이 땅에도 충만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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