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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an 02. 2023

잊을 수 없는 100년 전의 참극-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일본, 식민지, 책임, 역사, 미래

"누가 가메이도 고노하시 다리에 조선인 부인의 참사체가 있으니 보러오라고 했다 ......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해서 가보았다 ...... 참살당해 있던 것은 서른을 좀 넘은 정도의 조선인 부인으로, 그 성기에는 죽창이 꽂혀 있었다. 게다가 임산부였다. 차마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어서 얼른 돌아왔다."(214페이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때 도쿄 가메이도에서 일본 국가와 민중이 벌인 조선인 학살극을 한 일본 시민이 묘사한 한 것이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바로 100년 전 9월 1일, 도쿄 부근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수천 명이 일본 군경과 자경단에게 학살됐다. 그러나 아직도 진상은커녕 피해자 숫자, 피해자의 이름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일본 정부는 그때의 진실을 덮는 데만 급급해 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그때의 진실을 밝히고 추궁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


올해는 관동대진진 조선인 학살사건이 일어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다. 참사 100주년을 맞아 그때 영문도 없이 억울하게 살해된 수천명의 원혼이 뒤늦게나마 한을 풀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관동대지진-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 국가와 민중의 책임>(논형, 야마다 쇼지 지음, 이진희 옮김, 2008년 7월)은 관동대지진 때 일본 국가와 민중이 조선인 학살에 대해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준엄하게 따져 묻는 책이다. 릿쿄대 사학과 교수를 지낸 저자 야마다 쇼지는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가한 이래 일본군위안부와 강제연행 보상운동, 한국의 양심수 석방운동을 줄기차게 벌여온 대표적인 일본의 양심파 지식인이다.


그는 이 책 한국어판 서문에서 "제목에서 제시하고 있듯이,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 국가 책임과 더불어 민중의 책임도 밝히고자 한다"면서 일본 국가의 책임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조선인의 독립운동을 두려워한 나머지 일본 치안당국이 조선인 폭동이라는 오보를 유포함과 동시에 계엄령 아래 군대를 통해 조선인을 직접 학살함으로써 일본 민중의 조선인 학살을 유도한 것이고, 두 번째는 일본 정부가 조선인 폭동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은 뒤 국가 책임을 은폐하기 위해 각종 공작을 행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본 정부는 국가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사법성이 조선인의 범죄를 날조해서 발표하고, 학살된 조선인의 유해를 감추고 인도하지 않았으며, 조선인 학살범인 민간인에 대해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대부분 가벼운 벌만 내렸다. 이런 일본 정부가 행한 각종 은폐 공작은 이 책에 매우 꼼꼼하고 자세하게 서술돼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특히 이제까지 조선인 학살 문제에서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던 일본 정부의 국가 책임 은폐 공작을 밝히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말하면서, "조선인 학살의 전모를 감추기 위해 조선인 유해를 은닉하고 조선인에게 건네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본서가 처음 지적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일본 정부의 책임과 함께 일본 민중의 책임을 거론한 것은, "일본 국가가 스스로는 반성할 수 없는 체질을 갖고 있는 이상, 국가 체제에 함몰되어 조선인 학살에 가담했던 일본 민중이 먼저 자신을 반성하고, 그들을 조선인 학살로 몰고 갔던 국가 책임을 추궁하는 주체가 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최종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시민들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를 대할 때 가장 궁금한 대목은 과연 조선인 학살자 수가 얼마인가 하는 점이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일본 신문의 보도에는 300명에서 519명의 사망자가 난 것으로 나왔다. 일본 사법성이 조사해  공식 발표한 수는 이들보다 훨씬 적다. 230명에 불과하다. 반면,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 1923년 12월 5일자는 "본사 피학살 교일 동포 특파조사원 제1신"이라는 기사에서 학살자 수가 6661명이라고 보도했다. 이것이 여러 가지 희생자 수 자료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자 수다.


저자는 희생자 수에 관해 "학살된 조선인 수가 수천 명에 달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지만, 이를 엄밀하게 확정짓는 것은 이제 오늘날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여러 가지 증언과 자료를 살펴보면 사법성 발표나 신문 보도보다는 훨씬 많지만, 일본 정부의 은폐와 시간의 경과로 희생자 수를 확실하게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법성의 희생자 발표 수가 아주 적은 것은 일본 군경이 직접 학살에 가담한 것을 숨기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가장 사망자 수가 많이 나온 도쿄의 경우 사법성 발표는 53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가메이도, 오지마 등지의 학살자 자료나 증언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다. 즉, 도쿄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진 군경의 직접 학살 사실을 숨기려는 한 데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법성은 사이타마현에서 도쿄보다 많은 66명이 학살된 것으로 발표했는데, 여기서는 민간인으로 구성된 자경단이 주로 학살에 가담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풀이했다.


일본 정부의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은폐극은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고이케 유리코가 도쿄 도지사가  된 이후, 도쿄도에서 매년 거행되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이전까지 보내왔던 도쿄도지사의 추도사를 중단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가 북한에 납치된 수십 명 규모의 피해자 문제에 관해서는 국력을 총동원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수천명이 학살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자 문제에 관해서는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는 인도주의 정신에 반할 뿐 아니라형평성에도 어긋나는 행위다.


한국 정부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 일부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에만 맡긴 채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의미 있는 행동이나 발신도 해오지 않아왔다. 한국 정부는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1919년 4월 수립된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제라도 임시정부 수립 이후 일본 수도 한 복판에서 벌어진 동포의 대학살극에 관해 이제라도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마땅하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참사 100주년은 한국 정부가 그동안 이 사건에 취해온 미온적인 자세를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관동대지진 학살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는커녕 피해자가 버젓이 살아 있는 강제동원 노동 피해자 배상 문제마저 일본의 논리에 굴복해 백기투항할 태세다. 그래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집단 학살 100주년이 되는 2023년 새해 벽두가 더욱 우울하다. 정부가 역사를 잊으면, 역사를 기억하도록 시민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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