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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an 05. 2023

조선통신사 연구의 대가, 나카오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재일인권운동, 유네스코 기록물 등재, 국제교류재단상 


조선통신사 연구자 겸 재일 한국인 관련 인권 운동가인 나카오 히로시(86) 교토예술대(옛 교토조형예술대) 객원교수가 1일 돌아가셨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나카오 선생이 숨진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 미디어를 찾아보니 아직 아무 데도 부고 뉴스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야후 일본>에서 일본 쪽 미디어를 검색해 보니 유일하게 <아사히신문> 4일자 인터넷판에만 아주 짧게 뉴스가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오사카 총영사로 있을 때 총영사관 관할지역인 시가현에 살고 계신 나카오 선생을 비교적 자주 만났던 터라 더욱 그의 부고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80살이 훌쩍 넘는 나이에도 조선통신사 문제뿐 아니라 재일 한국인 인권, 그리고 한일 민간 교류와 관련된 현장에 정력적으로 참가하며 한일 우호 증진에 힘쓰시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까지 살아 계신 분들 중에서 조선통신사 문제에 가장 정통한 분이어서, 언제가는 선생이 돌아가시면 조선통신사 연구의 맥이 끊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 선생에게 "나아도 많이 드셨으니 젊은 후학을 키워야 하지 않으시겠냐"고 여쭸더니, "나이가 이래도 아직 건강하다"고 답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앞으로 10년은 문제 없다는 자신만만한 태도였습니다. 실제 선생은 식사도 비슷한 연령의 다른 분들에 비해 왕성하게 하시고 몸도 강건하셨습니다. 손 전화도 사용하지 않고 집 전화로만 연락이 됐는데도 약속 시간에 어김없이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성실파였습니다.


그가 한일관계에 기여한 업적은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역시 조선통신사 기록을 201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시킨 공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당시 일본 '엔피오법인 조선통신사 연지연락협의회'의 학술위원장을 맡아 일본 쪽 기록물을 찾고 모아 등재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런 공로로 2018년 도쿄에서 열린 제26회 한일포럼에서 부산문화재단과 함께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가 한일포럼상을 수상했고, 일본 쪽의 수상 대표로 그가 나왔습니다. 저도 그때 포럼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관할지역에 사시는 나카오 선생이 상을 받는 것을 보고 어깨가 으쓱 올라갔었습니다.  


나카오 선생은 2021년에는 국제교류재단이 해외에서 한국을 알리는 데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는 '국제교류재단상'의 제8회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책을 많이 썼는데, 한국에도 <조선통신사-한일 문화교류의 역사>(한울, 2017년)을 비롯한 몇 권이 번역 출판됐습니다.


<아사히>에서 나온 그의 사인은 '뇌 경색'입니다. 총영사 시절 그와 나름대로 깊은 관계를 맺은 한 사람으로서 깊은 조의와 함께 평안한 영면을 빕니다. 또 그의 조선통신사 연구와 한일 우호 활동을 이어갈 많은 후학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한국 정부도 그의 한일관계에 공헌한 업적을 평가해, 훈장이라도 추서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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