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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an 09. 2023

'방향을 정해 놓고 기사 쓰는' 한국 언론의 고질 비판

야마, 일본식 용어, 한국언론, 신뢰

한국의 언론 현장에서는 아직도 '일본 용어'를 꽤 많이 쓰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신문이 전부 한글 가로쓰기로 바뀌면서 요코(가로), 다테(세로)와 같은 말은 사라졌지만, 뜻 맞는 기자 무리를 뜻하는 '구미'나 경찰(사건) 기자를 가리키는 '사츠마와리(사스마리)'와 같은 용어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특종을 의미하는 '도쿠다네'라는 말도 '도쿠다니'로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다.


'야마'라는 일본 단어는 지금도 기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일본 용어일 것이다. 일본어 사전을 보면 야마에 관한 여러 풀이가 있는데, 그 중에 "문예 등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 가장 재미 있는 부분 또는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 언론 현장에서 쓰는 야마는 이런 의미의 말이다. 일본 사전의 예문에는 "이 소설에는 야마가 없다"라는 것이 나오는데, 한국 기자들도 거의 비슷하게 "이 기사의 야마는 무엇이지?"라거나 "이 기사에는 야마가 없다"는 말을 하루에도 수없이 되풀이한다.


<야마를 벗어야 언론이 산다>(서해문집, 박창섭 지음, 2012년 4월)는 한국 언론 현장에서 상투어로 쓰고 있는 일본 용어 '야마'를 비판적 관점에서 다룬 책이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사실을 취재하고 난 뒤 방향을 잡아 기사를 써야 옳은데 한국 미디어들은 정파적 의도나 회사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의도적으로 야마(방향)를 미리 잡아놓고 취재를 하니 문제가 많다는 얘기다. 즉, 기사의 틀과 방향이라는 '그릇'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그릇에 넣을 내용물(사실)을 나중에 채우는 식으로 취재 보도가 이뤄진다는 비판이다.


필자인 박창섭씨는 1996년부터 2010년까지 <한겨레>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연구자로 방향을 바꾼 언론학자다. 서울대에서 석사학위를 하고 미국의 서던일리노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지금은 뉴욕주립대 알바니캠퍼스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한겨레 한참 후배로 그와 나의 근무기간이 완전히 겹치지만 깊은 얘기를 나눈 사이는 아니었다. 오래 전에 낸 그의 책을 이번에 읽으면서 그의 문제의식을 뒤늦게 알게 됐다. 한편으로는 같이 있을 때 교감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그에 관해 깊게 알게 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의 서울대 석사학위 논문('한국 언론의 야마 관행과 언론의 현실 구성')을 바탕으로 일반 시민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재집필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연구서이지만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실용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가 10년 이상 한겨레 기자로서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계 내부를 직, 간접으로 관찰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한국 언론 관행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이자 비판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야마를, 저널리즘의 분석 틀인 '프레임' 개념과 유사한 측면이 많지만 텍스트에서만 작동하는 프레임과는 달리 취재 보도 전반에 작동한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의 독특한 관행이라고 본다. 그는 야마를 '주제 야마', '관점 야마', '의도 야마'로 나눠 이것이 취재 보도 과정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검토했다. 구체적으로는 그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직접 취재했던 2009년의 미디어법 파동과, 2010년 무상급식 논란과 관련한 기사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기사 내용뿐 아니라 기사를 쓰거나 기사 취재 지시를 내린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간부를 인터뷰해 기사가 사실보다는 회사가 미리 짜놓은 '야마'에 맞추어 생산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기자로서 또는 데스크로서 그가 지적하는 '저널리즘의 정도에 어긋난 짓'을 아무런 생각 없이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들어가는 말'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 언론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야마를 중심에 두는 한국 언론의 취재 보도 관행은 저널리즘의 본령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예컨대 미리 정해진 야마에 맞춰 사실을 재구성하거나, 보여주고 싶은 내용만 기사에 담거나, 전체 사실의 일부만을 과장해서 보여주거나, 엉뚱한 사실을 특정 사안과 관련 있는 것처럼 엮거나 하는 일은 '진실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한다.


야마 중심의 취재 보도 관행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거나 유발하는 심각한 요인이다. 사안의 본질과 진실을 국민에게 알려주기보다는 정파적 입장에 따라 왜곡된 현실을 강조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과연 그의 이러한 고발에서 자유로운 기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또한 그의 말에서 언론 대신 검찰을 대입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바뀌려면 언론과 검찰이 먼저 바꿔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몇 년 전에 검찰 출입을 한 적이 있다. 검찰 수사 기사에서는 검찰이 흘리는 게 야마다. 그걸 가지고 쓸 수밖에 없다. <중략> 만약 검찰이 알려준 대로 안 쓰고 다른 식으로 쓴다면 대단한 결단이 필요하다."


그와 인터뷰한 한 중견 기자의 말이다. 이렇게 한국의 대다수 기자들은  회사 간부 또는 사회의 힘 있는 자들이 설정해 주는 야마대로 기사를 생산한다. 이 인터뷰만 보고도, 그가 '야마를 벗어야 언론이 산다'고 절규하는 투의 문장으로 이 책의 제목을 삼은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목적이 훌륭해도 사실을 무시한 기사를 써서는 안 된다. 사실이 먼저고 해석과 판단은 뒤에 오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좌든 우든 가리지 않고 해석과 판단이 앞에 오고 사실을 거기에 꿰맞추는 데 너무나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다. 언론이, 기사가 특정 목적 수행을 위한 도구로 소비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진실과 공정성, 관성과 거리가 먼 기사가 남발되고, 결과적으로 독자의 신뢰를 잃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


그는 <'야마'의 관행을 넘어서서>라는 '나오는 글'에서 "기자가 소속 회사의 보수나 진보적 성향에 상관 없이 사람들에게 진실한 정보를 전달해서 세상사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시각과 판단을 갖게 하는 것이 저널리즘이 수행해야 할 가장 큰 가치라고 본다"면서 "아울러 권력과 사회를 감시하고 사회적 공익에 기여하는 것 역시 기자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책을 쓴 지 10년이 지났지만 한국 언론의 정파적이고 의도적인 '야마 관행'은 갈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참에 나도 '야마를 벗어야 한국 언론이 산다'고,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 한국 언론이 산다'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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