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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an 23. 2023

스포츠는 어떡하면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스포츠를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한겨레신문>에 있을 때, 스포츠 기자의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어떡해서든 꼭 한 번은 스포츠 부서에서 일해 보고 싶은 욕심에 스포츠 부장을 자원한 적이 있다. 또 이후 사회부장을 마친 뒤에는 스포츠부 선임기자로 1년여 동안 축구, 농구, 테니스 등의 종목을 담당하기도 했다. 선임기자 시절인 2006년 독일 월드컵 축구대회를 현지에서 취재하며 독일, 프랑스,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팀들의 경기를 직접 관전한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인생 최대의 추억이다.


잠시나마 기자로서 한국 스포츠를 취재하면서, 그리고 스포츠 애호가로서 한국 스포츠에 관해 절실하게 느낀 것은 스포츠 선수를 비롯한 스포츠인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운동을 잘할지는 모르지만 운동 외의 분야에는 거의 문외한에 가까웠고 스포츠 행정 등에 관해 거의 발언권도 없었다. 한마디로 한국 스포츠는 정치, 경제 등 기득권세력의 '식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의 스포츠가 앞선 나라들의 수준에 이르려면 '스포츠인이 주인이 되는 스포츠'가 되어야 한다는 막연한 문제의식을 가졌었다. 예를 들어,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축구협회장도, 프로축구리그인 제이리그의 회장도 모두 선수 출신이지만 한국은 재벌 회사의 회장이거나 간부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한국 스포츠가 스포츠 자체로 대접을 받기 힘들 것이라는 게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요즘은 그래도 야구 선수 출신인 허구연씨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되는 등 일부 진전이 있지만, 다른 분야의 식민지에 처해 있는 스포츠계의 구조가 크게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안정환, 허재 등 일부 인기 종목의 유명 선수 출신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면서 스포츠인의 위상이 높아진 듯이 보이는 면도 있지만, 그것이 스포츠 본연의 위신 고양이나 주체성 강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스포츠의 식민지화가 오락 영역에까지 확장된 것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한국 스포츠 미디어 담론구조의 변화>(글누림, 김창금 지음, 2021년 7월)는 한국 스포츠계가 주체가 아닌 객체로 대접 받아온 상황을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세 신문의 스포츠 사설 분석을 통해 살펴본 책이다. 저자인 김창금씨는 1993년 <한겨레>에 입사한 뒤 99년부터 스포츠 기자의 외길을 길어온 스포츠 전문기자다.(한겨레에서 직위는 '스포츠 선임기자') 내가 스포츠부에 근무할 때 같이 축구를 담당했고, 사내 축구동호회의 열렬한 동지이기도 했다.


이 책은 김 기자가 한국체육대학에서 쓴 박사학위 논문을 손질해 출판한 것이다. 스포츠 저널리스트로서 느꼈던 의욕과 열정, 문제의식을 아카데미즘의 엄격함으로 다듬어 내놓은 스포츠 분야의 보기 드문 역작이다. 2022년도 세종도서 학술분야에 선정된 것만 봐도 책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김 기자는 이 책에서 "한국의 스포츠가 어떻게 '말없는 자' '스피커를 잃은 집단'이 되었는지를 미디어의 담론 분석을 통해 관찰했다." 구체적으로 영국 랭커스터 대학의 명예교수이며 언어학자인 노먼 페이클러프의 비판적 담론 분석 방법을 사용해, 세 신문의 스포츠 관련 사설을 통시적, 공시적으로 분석했다. 김 기자는 한국 스포츠 담론 분석을 위해 세 신문의 스포츠 사설을 내용에 따라 민족주의, 스포츠 정신, 개혁주의, 남북 이데올르기의 네 범주로 나눴다. 그리고 각 범주마다 통시적, 공시적 분석을 하기 위해  세 신문 중에서 대표적인 사설을 골라 비판적 담론 분석을 수행했다.


김 기자는 이런 꼼꼼한 분석을 통해 두 가지 특징을 끌어냈다. 하나는 사설 집필자의 스포츠 언어 분류 체계에서 '집단 대 개인'의 대립 구조가 두드러졌고, 특히 개인보다 집단 가치가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인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는 것이 보이긴 하지만, 스포츠 언어에서 국가, 민족, 팀 등의 집단적 가치가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두 번째 특징은 스포츠의 위치가 부차적이고 종속적으로 매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스포츠 사설은 민족주의, 남북교류, 국위선양, 국민통합 등 정치, 사회적 이슈와 결합했을 때 주로 등장했으며, 지배적 담론을 강화하는 요소로 쓰였다"면서 "스포츠는 자체의 담론을 만들지 못했으며 미디어가 '호명'하는 위치에 머무는 일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개인'을 어떻게 회복하느냐, 스포츠 자체의 '담론 생산 능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서로 연결돼 있다"면서 "기존의 엘리트 선수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한국 스포츠계가 새로운 스포츠 시스템 논의의 주체로 참여하기 위해서라도 개인과 담론의 문제는 반드시 짚어야 할 시대의 화두"라고 말했다.


스포츠계의 주변화, 종속화, 도구화가 스스로 말하는 '스피커'의 부재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스포츠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자체 스피커가 없는 사회 각계의 소외 세력은 자체 스피커 찾기 노력을 더욱 맹렬하게 펼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일부 기득권 세력에게만 스피커를 과도하게 제공해 발언의 양극화를 조장하는 미디어도 크게 반성하고 각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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