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보는 눈>, 미중패권, 분단국가, 미중대결, 반도체, 동아시아
한국 사람에게 대만은 어떤 나라인가? 아니 나에게 대만은 어떤 나라인가?
우선 머리 속에 떠오르는 순서대로 적어보면, 한국과 같은 분단 국가, 199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에 한국과 함께 속한 나라, 한국처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나라, 세계 최대의 반도체 위탁생산업체 TSMC를 보유한 나라, 언제 중국의 침공을 받을지 모르는 불안한 나라 등등이다.
더 나아가 대만 사람들은 같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면서도 한국보다 일본에 우호적이라든가, 조선의 총독은 우악스런 육군 출신이 주로 맡았지만 대만의 총독은 개방적인 성향이 강한 해군 출신이 맡았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반감이 적다는 등의 얘기를 한다면, 대만을 좀더 이해하는 축에 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0여년 전에 몇 년 간격으로 대만을 두 번 여행한 적이 있는데, 첫 인상은 '일본과 한국의 중간 정도 수준의 나라'였다. 타이베이 등 도시의 거리나 지하철 풍경이 일본처럼 잘 정돈돼 있었지만, 일본에는 못 미치고 한국보다는 낫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자로 된 상점의 간판 글씨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보는 약자가 아니라 원래의 정자로 적혀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이것은 일본보다 한국과 비슷했다.
최근 대만이 한국에서 화제에 오르는 것은 주로 미중 대결, 그중에서도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전략의 맥락에서다. 중국이 대만을 침략할지 모른다는 대만 안보 위기를 상정하고 한국이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중국의 반도체 기술 패권을 막기 위해 한-미-일-대(만)가 어떤 협력을 할 것인지가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세련된 표현으로 하자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전략' 차원에서, 거칠게 말하면 부상하는 중국 봉쇄전략 차원에서 보는 대만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대만은 최근의 이런 전략적 환경이 아니더라도 한국과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매우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미래 건설을 위해서도 서로 협력할 것이 많은 나라다. 다만,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런 점을 잘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대만을 보는 눈>(창비, 최원식 백영서 엮음, 2012년 11월)은 우리가 잘 모르는 대만, 한국과 대만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안내서다. 10여년 전에 나온 책이어서 최신 자료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이 대만 깊이 이해하기에 장애를 주지는 않는다.
이 책은 한국과 대만의 지식인 16명이 대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를 한-대만 관계,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탐사한 대만 연구서다. 일제 식민지지배와 냉전 시기 '반공 우방', 그리고 독재와 민주화, 국가 주도의 산업화라는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역사나 국민 구성의 차이 등 다른 배경 속에서 독자적으로 살길을 개척해온 한국과 대만 두 나라의 모습을 상대방의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호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돼 있다. 1부 '기본 시각'에서는 근대 한국-대만의 교류사와 현대 대만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쟁점을 소개한다. 2부 '대만 정체성의 시각'에서는 대만 사회의 구성과 대만이 당면하고 있는 정치, 사회 과제를 '2.28사건' '민주화와 본토화' '양안관계'를 열쇠말로 삼아 고찰한다.
1부와 2부가 이 책의 고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부에서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우리에게 대만은 무엇인가 : 다시 보는 한국-대만 관계'라는 글에서 자신이 냉전적 시각을 벗어나 대만을 발견한 과정을 소개하며 한국 사람이 오늘날 대만을 이해하기 위한 4가지 질문을 던진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인가', '대만인은 중국인인가', '대만은 일제 식민지를 긍정하는가', '대만은 독립을 원하는가'가 그것인가 어느 하나 간단하고 쉽지 않다. 천광민 대만 국립정치대학 대만문학연구소 소장은 대만이 일제 식민지와 국민당 독재 시대를 거쳐 민주화와 본토화의 흐름 속에서 새 진로를 모색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이 두 글이 전체를 아우르는 총론 격이다.
2부에는 세 편이 글이 있는데, 첫 번째인 허이런 국립타이베이교육대학 대만문화연구소 소장의 '대만 족군관계와 2.28사건'이 가장 흥미롭다. 족군 관계는 국민 구성이라고 보면 되고, 2.28사건은 한국으로 치면 4.3사건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만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단일 민족이 아니다. 구성이 매우 다양하다. 띠라서 문화도 다양하다. 아마 대만에 대한 대부분의 오해는 이런 점을 한국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봐도 된다.
허 소장에 따르면, 대만은 크게 원주민 위주의 남도문화와 한족 위주의 한족문화로 나뉜다. 또 일제가 청일전쟁 뒤 1895년부터 대만을 식민통치하면서 3개의 구역으로 나눠 통치했다. 3개 지역은 투자형으로 개발한 서부평원, 이주형으로 개발한 동부지역, 원주민 거주 지역으로 봉쇄형으로 가둔 종앙산지다. 또 대만인의 구성은 4개 족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원주민, 민난인(푸젠성 이주자), 하카인(객가인, 광동성 이주자), 신주민(외성인)이다. 즉, 두 개의 문화, 3개의 구역, 4개의 족군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대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외성인이 1947년 본성인을 대량 학살한 2.28사건을 계기로 대만인 의식이 생기고, 민주화와 본토화 논란을 거치면서 대만 안의 갈등,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3부 '비교의 시각'에서는 문학과 영화, 민주화와 경제모델을 주제로 한국과 대만의 상호관계와 영향을 살펴본다. 이 부분에서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한국에서 연극과 영화를 큰 인기를 끌었던 <칠수와 만수>의 원작이 대만 작가 황춘밍의 소설 '두 페인트공'이란 사실이다. 이것을 보면 두 나라 사이에는 문화적으로 상당히 공명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부 '교류의 시각'에서는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현대까지 한국과 대만의 교류와 영향을 추적한다. 1920~40년대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나온 대만 기사를 분석해 당시 조선 사람들이 같은 일제 식민지배에 있으면서도 대만에 관해 우월의식을 지닌 점을 밝혀냈다. 이런 인식은 일본이란 창을 통해 대만을 봤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또 무정부주의 혁명가였던 신채호가 대만 무정부주의자와 교류한 역사, 식민지 시대 최고의 무용가인 최승희가 대만 공연에서 환대를 받는 모습도 나온다. 최근에 최승희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을 자주 찾고 있는 조정희 전 교수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어, 최승희의 대만 공연과 관련한 글이 너무 반가웠다. 당시 최승희씨는 마치 지금의 케이팝의 아이돌 이상의 환대를 받았다.
4부에서는 대만에서 한류가 성공한 배경 등을 짚으면서 한국 쪽에서 한류를 한국 문화의 우월감이나 돈벌기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나는 4부에서 대만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쯔유스바오(자유시보)>에 나온 한국과 관련한 기사를 분석한 논문을 매우 인상적으로 봤다. 이 신문은 서울의 한자 명칭을 한성에서 서얼로 바꾼 것, 독도, 역사청산, 한국 경제, 한류 등에 큰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는데, 이 신문의 한국 보도 목적은 "한국을 매개로 대만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즉, 대만 독립과 위신 높이기를 위해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한국의 사례를 끌어들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한국의 많은 국제 보도도 이런 식으로 다뤄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대만은 어떤 나라인지,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이 좋을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만은 경상도 정도의 크기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정치, 경제, 역사, 문화적으로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나라라는 사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대만을 더 잘 보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대만이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