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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pr 10. 2023

일본 학교에 침투하고 있는 우경화의 실상

<교육과 애국>, 오사카, 하시모토 도루, 유신회, 아베 신조

3월 28일, 내년부터 사용할 일본 초등학교용 사회 ·지도 교과서 검정에서 우경화 흐름이 더욱 강해진 결과가 나왔다. 일본 검정교과서의 우경화 경향은  극우 성향의 단체인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만든 역사 교과서가 2001년 검정에 통과하면서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해,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강해져왔다. 


이번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이 한국사회에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이런 결과가 3월 16일 한일 정상회담 바로 뒤에 나온 탓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회담에서 일본의 뜻을 100% 수용한, 매우 굴욕스럽고 반민족적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조치를 내놓은 지 불과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세게 뒤통수를 맞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것만 봐도 일본 교과서의 우경화는 그들의 계획에 따라 앞으로 더욱 강하고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교육과 애국>(암파서점, 사이카 히사요·마이니치방송영상취재반 지음, 2019년 5월)은 우경화한 일본의 정치가, 교육 현장에 얼마나 깊숙하고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인 사이카 히사요씨는 <마이니치신문> 계열의 오사카 지방방송사인 <마이니치방송>의 교육 전문 기자다. 내가 오사카 총영사로 근무할 당시 행사장에서 한두 번 인사를 한 기억이 있다.


총영사 시절에 책이 나왔는데 그때는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지 못했고,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지인을 통해 책을 입수해 읽어봤다. 아직 한국에서는 번역되지 않았다. 마침 일본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검정 파문이 한창 일고 있는 때인지라, 일본의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경화 흐름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새로운/계속하는 '교과서 문제')는 일본 학교에서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흐름과 갈등을 다룬, 마이니치방송의 다큐멘터리 <영상 '17 교육과 애국~교과서에서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2017년 7월 30일 방송)를 글로 다듬은 것이다. 다큐멘터리 내용을 토대로 취재 과정과 방송 뒤 반응 등을 추가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이면과 교육현장에 대한 정치의 압력을 생생하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 방송비평간담회가 주최하는 '제55회 갤럭시상 텔레비 부문 대상'을 받았다. 또 이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한 영화가 2022년 5월에 공개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부(첨예화하는 '정치와 교육'-오사카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는 오사카 지역에서 30년 정도 교육 담당 기자로서 교사를 비롯한 교육 관계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교육현장을 밀착 취재해온 저자가, 극우 정치집단 오사카유신회의 등장 이후 교육 현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쓴 '현장 보고'다.


1부는 2019년 초등학교에 전후 처음으로 도입된 도덕교과서와 검정 문제부터 시작한다. 도덕 과목이 전후 73년 만에 처음으로 교과서로 도입됐는데, 그를 앞두고 실시된 검정 결과가 큰 화제가 됐다. 검정 결과, '빵집'이라는 단어가 '일본과자집'이라는 단어로 바뀐 교과서가 등장하고, 여기에 전국의 빵집이 항의를 했다는 내용이 책 첫머리에 나온다. 코미디 같이 들리지만, 이런 변화는 '나라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에 비추어' 볼 때 서양 냄새가 나는 '빵집'은 "부적절"하다는 검정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저자는 이 사례가 전전에 '수신'이란 과목으로 학생들에게 국가의 일률적인 가치를 주입하던 '교육칙어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취재에 나선다. 취재를 통해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담당자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노골적으로 수정 지시를 하지는 않지만, 출판사와 검정조사관의 면담과 문답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수정 방향이 암시되고 출판사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를 파헤친다.


또 우익 역사 교과서의 집필자를 직접 만나 그들의 집필 의도를 취재한다. 그들에 대한 취재를 통해 '난징학살', '위안부', '오키나와 주민 집단자살'이 일본의 교고서에서 실려서는 안 되는 3대 금기이고, 이런 내용을 담은 다른 교과서를 배제하기 위해 우익 진영이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확인한다. 


1부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우익 세력이 자신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를 상대로 벌이는 불채택 운동이다. 유일하게 '위안부' 문제를 기술한 마나비샤의 <함께 배우자, 인간의 역사> 책을 채택한 도쿄와 고베의 명문 중학교에 어느날 채택 철회를 요구하는 수백 통의 협박성 엽서가 배달되고, 그 배후에  우익 교과서 채택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본교육재생기구'와 '교육재생수장회의'가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특히, 교육재생수장회의의 의장이 자신의 이름으로 협박성 엽서를 보내고도 인터뷰 때 모른척 능청을 떨다가 기자가 엽서을 내놓자, 그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얼버무리며 협박으로 그쪽에서 받아들였다면 미안하다고 마지 못해 시인하는 대목은 읽으면서도 통쾌했다. 상대를 꼼짝 못하게 옭아매는 이런 취재가 기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2부는 2008년 극우 성향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유신회 대표가 오사카부 지사가 되면서 오사카 교육 현장에서 벌어진 격변을 추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교육과 정치의 거리를 둘러싸고 대전환기에 서 있는 오사카의 교육 위기에 관한 보고서다. 저자는 하시모토가 약 8년간 행정의 우두머리를 맡으면서 오사카 교육환경을 완전히 바꿨으며, 그가 교육을 '정치 도구의 하나'로 삼았다고 평가했다. 


아베 정권은 2014년 교육위원회의 장과 교육장을 한 명으로 통합하고, 교육장을 자치단체장이 임명해 교육에 정치가 개입하는 길을 튼 지방교육행정법을 개정했다. 이런 흐름의 선구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하시모토였다. 그는 2012년 학력 테스트의 학교별 결과 공표와 교원의 상대 인사 평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교육기본조례를 밀어붙였다. 이 조례는 학교를 경쟁체제로 몰아넣는 데 그치지 않고 자치단체장이 교육 행정을 장악함으로써 교육에 정치의 의사를 주입하는 길을 처음으로 열었다. 


신자유주의적인 내용의 이 조례는 미국 뉴욕의 동시테러 사건 다음 해인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애국심의 고취 속에서 도입한 '낙오 제로법(No Child Left Behind Act)의 판박이였다. 저자는 오사카 조례의 문제점을 경고하기 위해 낙오 제로법 실시에 따른 미국의 교육의 황폐화를 보도하지만, 하시모토 당시 오사카 시장은 교육 현장의 반발을 무시한 채 조례를 강행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친구를 공립학교 교장 및 교육장에 임명해, 교원 직무관리라는 명목으로 입학식, 졸업식 때 국가를 부르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입술 검사까지 하도록 했다. 이런 결과, 반골정신으로 유명한 오사카 교육계에서 우수한 교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약자를 위한 교육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오사카 판 교육의 황폐화' 현상이다.


2019년 봄에 일어난 사건은 오사카 교육의 정치화를 잘 보여준다. 한 사회과 베테랑 여교사가 다각적인 수업을 실천하고 있다는 미담 기사가 한 미디어에 실렸는데, 오사카유신회는 이 기사 중에 위안부 관련 수업을 했다는 부분만 도려내 대소동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내용은 문제 삼지 못한 채 기사 취재와 관련해 보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형식만 문제 삼아 경고 조치를 했다. 하지만 정치가 학교 수업에까지 개입하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줬다.


저자는 "교육현장을 돌아보는 취재가 미디어 현상을 통감하는 기회도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마지막 장에서 "학교의 선생이 권력에 위축되면 정말로 일본은 끝난다고 생각한다"는 전직 교육 관리의 말을 인용하며, 그보다 먼저 "미디어가 권력에 위축되면 일본은 끝나버린다"고 생각한다고 비틀어 말했다. 정치에서 독립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치에서 독립한 미디어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전직 교육 관리나 저자의 말에서 '일본'을 '한국'으로 바꾼다면, 그것이야말로 지금 한국에서 가장 적확하고 절실한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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