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총영사 시절 이야기
일본에는 도쿄의 주일대사관 외에 9개의 총영사관이 열도를 따라 촘촘히 배치되어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세자면, 삿포로총영사관(홋카이도 관할, 1966년 총영사관 창설), 센다이총영사관(미야기, 후쿠시마, 아오모리, 이와테, 야마가타, 아키타현 관할, 1966년 영사관 창설 뒤 80년 총영사관으로 승격), 니가타총영사관(나가노, 니가타, 도야마, 이시카와현 관할, 1978년 창설), 요코하마총영사관(가나가와, 시즈오카, 야마나시현 관할, 1966년 창설), 나고야총영사관(아이치, 미에, 후쿠이현 관할, 1966년 영사관 창설 뒤 74년 총영사관 승격)이 있다. 여기까지가 대체로 일본을 남북으로 양분할 때의 경계선이다. 공관을 일본 전국에 두 개만 두고 있는 나라는 나고야까지를 도쿄에서, 그 밑의 남쪽을 오사카에서 담당하는 식으로 관할을 나눈다.
이어서 오사카총영사관( 오사카부, 교토부, 나라, 시가, 와카야마현 관할, 1949년 대표부 사무소 창설 뒤 66년 총영사관 승격), 고베총영사관(효고, 돗토리, 오카야마, 가가와, 도쿠시마현 관할, 1966년 영사관 창설 뒤 74년 총영사관 승격), 히로시마총영사관(시마네, 히로시마, 야마구치, 에히메, 고치현 관할, 1966년 시모노세키총영사관 창설 뒤 98년 폐관하고 99년 히로시마총영사관 개관), 후쿠오카총영사관(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오이타, 구마모토, 미야자키, 가고시마, 오키나와현 관할, 1949년 대표부 사무소 개설 뒤 66년 총영사관 승격)이 있다. 9개 총영사관의 관할에서 빠진 도쿄도, 치바, 이바라키, 사이타마, 도치기, 군마현의 영사업무는 주일대사관 영사부가 맡아서 한다.
일본처럼 다수의 공관이 몰려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정도밖에 없다. 미국은 대사관 외에 유엔대표부, 9개의 총영사관과 4개의 출장소가 있다. 한 나라로 치면 가장 많은 공관이 있는 나라다. 중국은 대사관 외에 8개의 총영사관과 1개의 출장소가 있다. 이밖에 러시아, 독일, 인도 등이 3개 이상의 공관이 있는 나라다.
공관 수로는 미국이 제일 많지만, 역사로 따지면 일본이 훨씬 선배다. 미국과 중국 등은 일본보다 한참 뒤에 공관들이 세워졌다. 이것만 봐도 오래 전부터 한국과 일본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일본에 공관 수가 많은 것은 식민지 시대부터 여러 사정으로 일본에 이주한 뒤 해방 뒤에도 정착한 동포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우리나라 공관이 처음 생긴 것은 1948년 정부 수립 다음해인 49년이다. 아직 미수교 상태이기 때문에 도쿄에 주일대표부를 설치하고, 오사카와 후쿠오카에 사무소를 세웠다. 그리고 1965년 수교 다음 해인 66년에 일본 각지에 본격적으로 영사관 또는 총영사관이 들어섰다.
이 당시 우리나라는 매우 가난했다. 일본 각지에 공관 터와 건물을 마련하기도 벅찼다. 물론 재일동포도 일본사회의 차별과 억악 아래서 악전고투하며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동포들은 나라를 잊은 설움을 털어낼 의지처가 생겼다는 기쁨에, 각지에서 돈을 모아 공관을 지어 나라에 기부했다.
내가 근무하면서 현지 동포들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제일 늦게 공관이 세워진 니가타총영사관 외의 9개 공관을 재일동포가 지어서 기부했다. 나는 이것은 잊어서는 안 되는 매우 귀중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재일동포 모임이 있을 때마다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노력했다. 내년 5월 준공을 목표로 재건축을 하고 있는 새 오사카총영사관 건물 안에도 동포들의 십시일반으로 오사카총영사관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일본 전체 10개 공관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공관 건립에 재일동포가 기여한 사실을 적어놓은 곳은 도쿄대사관과 오사카총영사관 2곳밖에 없었다. 도쿄대사관 홈페이지에는 '공관 약사'에 "1962년 11월, 재일동포 서갑호씨가 현 대사관 토지 및 건물을 한국정부에 기증'이라고 간략하게 서술해 놨다. 또 2013년 신축 완공된 새 대사관 건물 로비에는 서갑호(1915-76)씨의 흉상을 세워놨다. 서씨는 일본에서 방직업(사카모토방적, 한국의 방림방적 등 창립)으로 성공한 재일동포 실업가다.
오사카총영사관은 공관연혁에 긴 문장으로 그 내용을 적어 놨다. 다음이 그 내용이다.
‘미도스지에 태극기를!’ 주오사카대한민국총영사관의 정착
주오사카총영사관은 임대해 쓰던 청사가 좁아, 폭증하는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긴 오사카지역의 동포 유력인사들이 총영사관 청사 신축을 위한 '주오사카 대한민국 총영사관 건설기성회(가칭)'를 조직하였다. 한녹춘씨를 회장으로 하는 운영회는 오사카부를 비롯한 간사이지역에서 동포를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벌였다. 기성회는, 오사카의 중심지인 ‘미도스지에 태극기를’이라는 구호 아래 동포들의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미도스지 대로변에 157평의 총영사관 부지를 구입하고, 1972년 11월 7일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1974년 9월 15일 까지 약 2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드디어 지하 2층, 지상9층 규모의 코리아센터빌딩이 완성되었다. 차별과 억압에 신음하던 간사이지역 동포 26만여명의 전당이자 의지처가 탄생한 것이다. 코리아센터빌딩은 완공과 동시에 한국 정부에 기증되었다. 기증과 함께 건물 이름도 주오사카대한민국총영사관으로 바뀌었다. 미도스지의 총영사관 건물은 2018년 5월까지 오사카에서 ‘한국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건물로 자리 잡아왔다. (*완공 뒤 일정 기간 1~2층은 한국외환은행오사카지점으로 사용되었다.)
나는 일본 지역 공관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면서, 혹시 내가 재일동포들로부터 잘못된 사실을 전해 들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두 곳의 공관 외에 어느 공관도 이런 사실을 적어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많은 공관이 재일동포의 지원으로 세워진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면, 각 공관은 반드시 이를 누구나 볼 수 있는 형태의 기록으로 남겨 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교육과 홍보도 해야 한다고 본다. 기억력에만 의존하다가는 아주 소중한 역사적 사실이 퇴화하면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기록의 힘'은 '기억의 힘'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