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보판 국책수사>
일본에서는 수사기관이 억울하게 뒤집어씌운 죄를 원죄(冤罪)라고 부른다. 그리고 특수검찰이 '거악을 잡겠다'며 수사에 착수한 사건을 냉소를 포함해 흔히 '국책수사'라고 부른다.
<증보판 국책수사>(가도카와문고, 2013년, 아오키 오사무 저)는 일본 특수검찰이 벌인 '국책수사'의 희생자 14명의 증언과 수사를 포함한 일본 사법의 문제를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아오키 오사무는 <교도통신> 서울특파원(2002~2006년)을 지낸 지한파 언론인으로, 2006년부터는 자유기고가로서 저술과 논평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는 10여 권의 책을 냈는데, 그 중 <아베 삼대>와 <일본회의의 정체>는 한국에도 번역되어 소개됐다.
저자는 억울함을 주장하는 14명의 주장에 동조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일본 형사사법이 가진 문제점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수사를 당하는 사람의 쪽의 시점에서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는 압도적 다수의 미디어가 수사하는 편에 서서 피의자를 단죄하는 가운데, 이 책만큼 '당하는 사람'의 시점을 유지하며 일본 형사사법이 가진 문제를 재검토한 시도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이 책이 문제 삼는 일본 사법의 문제점은 대체로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은 1차 수사기관인 경찰수사를 견제하기는커녕 동조하거나 독자수사를 하면서 인권을 유린하고, 법원은 검경의 구속영장을 거의 100% '자동판매기'처럼 발부해주는 검-경-법의 '이익 공동체'가 작동하고 있는 문제다.
둘째, 구속 기간 중 검찰이 피고인(또는 피의자)를 상대로 조사를 하면서 자신들이 짜놓은 구도대로 진술을 하지 않으면, 보석도 허용해주지 않고 장기구속을 무기로 피고인이 자신들의 시나리오에 따르도록 압박하는 이른바 '인질 사법'의 문제다. 이런 상태에서 피고인들이 일단 보석을 얻으려고 '자백조서'에 서명한 뒤 재판에서 싸우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결국 이것이 '최악의 선택'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셋째는, 기소되면 유죄율이 '99.9%'가 되는 '기소=유죄'의 법칙이다. 대표적인 예로, 2019년 말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보석 중 '국외 탈출'한 사건도 100%에 이르는 유죄율에 절망해 법정 다툼이 더 이상 의미 없다는 생각 아래 단행했다고 한다. 기소가 곧 유죄가 되는 이런 현실은 재판을 앞둔 피고인을 절망하게 할 뿐 아니라, 검찰에게도 압박이 된다고 한다. 즉 재판에서 무죄가 나올 경우, 그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무능'으로 찍혀 출세 가도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은 법원의 동조와 협조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데, 법원은 전통적으로 검찰과의 우호관계 구축과 사법 내부의 질서 유지를 중시하는 풍조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넷째, 사건을 보도하는 미디어의 문제이다. 미디어 보도에 당한 사람들의 증언은 마치 한국의 검찰 기자를 나무라는 것 같다. "미디어는 당국이 흘리면 검증 없이 써댄다. 당국이 (정보를) 흘리면 대체로 '맞다'고 인식하고, 사건이 만들어진다"(스즈키 무네오 의원) " "매스컴은 수사기관이 흘리면 진실이라고 생각해 기사를 쓴다. 특히, 대형 매스컴이 문제다. (검찰의) 협력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 어느 큰 신문사 등은 (검찰의) 비자금 문제를 절대 쓰지 않는다. 나는 일본에 진정한 매스컴은 없다고 생각한다."(미쓰이 다마키 전 오사카고검 공안부장) "많은 사법기자는 부당한 조사에 의한 사건 날조 및 재판의 문제를 숙지하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 보도하지 않는다. (유죄율) 99.9%라는 예정조화에 미디어도 안주하고, 건전한 비판정신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호소이 유지 회계사)
미디어 문제를 다른 부분보다 길게 쓴 것은, 내가 언론사 출신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하는 말이 한국의 상황에 너무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극우성향의 거물 정치인으로 특수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던 무라카미 마사쿠니(2020년 사망) 전 자민당 참의원 의원과 가장 진보적인 성향의 주간지 <주간 금요일>이 공동으로 기획한, '일본의 사법을 생각하는 모임'이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 모임은 2007년 정계, 미디어, 사법 관계자들이 모여 검찰 수사와 사법의 문제점을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모임은 1년여 동안 특수검찰의 '먹이'가 됐던 14명을 각 모임마다 1명씩 손님으로 초대해, 얘기를 듣고 의견을 교환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 모임에서 오간 얘기를 정리하고 기사를 만들어 <주간 금요일>에 기고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저자인 아오키 오사무다. 이 모임은 총 15차례 열렸는데, 정치인(5명), 변호사(검찰 출신 3명 포함 4명) 사업가(2명), 언론인 출신, 회계사, 외교관 출신(이상 각 1명)이 피해자로서 증언을 했다. 또 마지막에 번외로 원죄 피해자의 '재심 담당 전문 변호인'을 초대해, 일본 사법 전반의 문제를 들었다. 이 책은 2008년 5월에 초판이 나왔는데, 저자는 2013년 증보판을 내면서 각 당사자들의 사건이 그동안 어떻게 진전됐는지, 그 뒤 검찰과 사법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친절하게 후기 등을 통해 보완했다.
14명의 '원죄' 당사자들은 이 책에서 검찰(대부분 특수검찰)과 경찰 수사 과정에서 겪은 억울함을 생생하게 밝히고 있다. 이를 읽으면서, 한국 특수검찰의 '원형'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없다. 어딘가에 그 뿌리가 있고 씨앗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