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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Nov 06. 2023

일본 추월 직전에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

김현철, 일본경제가 온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한일경제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는 일본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며 성장해 왔다. 정부 주도의 자원 배분과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이 대표적이다.

한국경제가 일본 방식을 그대로 베껴 따라 하다 보니 일본을 뛰어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복사본이 뛰어나다고 해도 원본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뛰어넘기는커녕 일본 경제에 크게 의존하는 일본 종속 구조가 커졌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한국 경제가 일본 종속적인 구조라는 복사본에서 벗어나 독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90년대에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세계화와 디지털화다. 한국은, 일본이 불황과 인구 감소의 이중의 충격파에서 헤매는 사이에 세계화와 디지털화라는 새 변화의 흐름을 잘 타고 넘었다. 급기야 2010년대 말에는 일본 경제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본을 추월하기 직전까지 왔다. 

<일본이 온다>(샘앤파커스, 김현철 지음, 2023년 9월)는, 일본을 추월하기 직전까지 온 한국경제가  그 동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지, 그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저자인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일본이 고도성장에서 장기 불황으로 들어간 90년대에 일본에서 유학과 교수 생활을 하면서  일본 경제의 추락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일본 경제 전문가다. 또 문재인 정권 초기에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지내면서 대외 경제 전략을 연구하고 짰다. 한국과 일본의 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성장 전략에 관해 자문을 하기도 했다. 이론과 실전 양면에서 한일 양국의 경제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데, 그보다 나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김 원장은, 일본이 역사적으로 세 번의 대외 팽창을 꾀했다고 말한다. 첫 번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벌인 임진왜란, 두 번째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일본제국주의가 벌인 대륙 침략과 태평양전쟁이다. 세 번째는 2012년께부터 중국의 굴기에 대항해 시작한 중국 봉쇄 움직임이다.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시기는 세 번째 시기다.

책은 4부로 돼 있다. 1부 '일본이라는 거울'에서는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는 지난 30년간의 일본 경제를 돌아보면서 일본 경제가 왜 장기 침체에 빠졌는지, 특히 경제의 발목을 잡은 정치의 문제를 살펴본다. 2부 '기적을 만든 한국 경제'에서는 한국이 세계화와 디지털화를 통해 어떻게 일본을 따라잡았는지를 추적했다. 

이 책의 핵심은 3부( '일본의 새로운 대외 팽창' )와 4부( '한국이 선택할 미래' )다. 3부에서는 2010년 경제력에서 중국에 추월 당한 일본이 미국의 힘을 빌려 아시아의 패권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을 잘 그리고 있다. 일본이 중국 봉쇄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아이디어를 낸 뒤 온갖 노력을 한 끝에, 2017년 아베-트럼프 정상회담에서  인태전략을 미일의 공동전략으로 승인받은 게 대표적이다. 일본이 2019년 7월에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을 빌미로 반도체 재료 수출 금지 등의 무역 보복 조치를 취한 것도 크게 보면 한반도의 분단 고착화를 통해  기득권 지키기와 동아시아 패권 회복을 노리는 일본 우파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김 원장은 자신이 대통령 경제보좌관으로 회담에 배석한 2017년 연말의 문재인-시진핑 한중 정상회담을 '역사의 변곡점'이었다고 회고했다. 그해 11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주창해온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미일의 공동 외교전략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바로 그다음 달 열린 문-시 한중 정상회담 때 시 주석이 의외로 가장 먼저 일본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해 초 중국산 물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매기며 무역전쟁을 시작했고,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 사령부의 이름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바꾸면서 군사 대결을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4부에서는 일본의 대외 팽창, 즉 자신들의 아시아 패권을 회복하기 위한 판 흔들기 속에서 한국 경제가 가야 할 길을 탐색한다. 김 원장은 한국 경제가 이에 휘말리지 않고 성장을 해나가려면, 대외전략과 내수전략을 잘 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외 전략에서는 미중 경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한국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그에 휘둘리지 않을 전략적 자율성을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즉, 중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인도와 아세안의 잠재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남방정책의 매우 중요한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뒤 이 정책을 사실상 폐기했다. 그는 이 점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대외전략 못지않게 내수전략에도 힘써야 한다면서, 새로운 주력산업의 발굴과 벤처 육성과 함께 빈부 격차를 완화하고 계층 사다리를 해소하는 포용 성장을 강조했다.

 "일본의 움직임을 그 어느 때보다 면밀하게 연구하고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시기에, 유감스럽게도 현실을 거꾸로 가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이 그려 놓은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있고, 그 결과 지금 한국 경제는 예상 경로를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15쪽)

"현재 한국 경제는 기로에 서 있다. 이대로 추락하거나 다시 성장하거나 하는 분기점에 놓여 있다. 국가와 국민,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함으로써 다시 한번 더 성장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345쪽)

위의 두 구절은 그가 왜 이 시점에서  이 책을 내게 됐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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