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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Nov 20. 2023

이데올로기는 20세기를 어떻게 움직여왔나?

홉스봄, 이데올로기, 공산전체주의, 극단의 시대

이념의 시대는 가고 실용의 시대가 왔는지 알았더니, 다시 이념의 시대가 온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개념도 불분명한 '공산전체주의'를 끌어대며 이념 투쟁을 선도하고 나선 탓이 크다. 윤 대통령은 "국가의 지향점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는 말도 했다.

윤 대통령의 인식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는 관계없다. 그냥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고 끌고 가니, 온 사회에 철 지난 이념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육사 교정의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문제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대표적인 이념 투쟁이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과연 이념,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우연한 기회에 마침 <20세기 이데올로기>(산처럼, 윌리 톰슨 지음, 전경훈 옮김, 2017년 8월)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은 20세기를 지배했던 4대 이데올로기(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은 20세기를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1991년 소련의 붕괴까지를 '짧았던 20세기' 또는 '극단의 시대'라고 부른 에릭 홉스봄의 시대 구분 틀에 맞춰, 4대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작용과 적용을 고찰했다. 저자는 "네 가지 이데올로기의 지적 토대들도 다루지만, 주된 관심은 이데올로기들의 역사적 적용과 작용을 고찰하는 데 있다. 이론을 논의하긴 하겠으나,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실천이다"라고 말했다. 책상머리 이론보다는 역사적 실천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얘기다.

저자는 민족주의를 따로 다루지 않는데, 민족주의는 모든 이데올로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가장 만연해 있던 근대 이데올로기지만 다른 모든 이데올로기 속에 스며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저자는 네 가지 이데올로기 모두 20세기 이전에 계보를 두고 있지만 1914년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개인의 소유권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와 기존 질서의 유지를 중시한 보수주의가 주류를 이뤘다고 본다. 1차 대전 전까지는 경제적으로 자유주의적인 모든 사회에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선 주요한 정치적 도전자는 보수주의였다. 하지만 1차 대전을 계기로 자유주의를 부르주아지의 계급 이데올로기로 낙인찍고 새로 등장한 것이 공산주의였다. 또 전쟁과 함께 부상한 또 다른 도전자가 파시즘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선발한 4개의 이데올로기가 20세기 시대의 변천에 따라 서로 어떻게 관련을 가지면서 각국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과 적용을 해왔는지 살폈다. 각 나라를 지배한 이데올로기는 시공이라는 변수에 영향을 받으며 생각하지도 못한 변주를 보였다. 어떤 때는 상호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얽히고설키기도 했다. 더구나 각국 특유의 민주주의가 더해지면서 더욱 다종다양한 모습을 띠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다. 에릭 홉스봄이 쓴 <극단의 시대>의 편제를 본받아 제1부(대참사의 시대, 1914~1945), 제2부(황금시대, 1945~1973), 제3부(위기

, 1973~1991)로 나뉘어 있다. 부별로 그 시대의 경제 및 사회 배경을 먼저 서술한 뒤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이 어떻게 전개됐는가 하는 식으로 쓰여 있다. 마치 이데올로기라는 안경을 쓰고 20세기 역사를 살펴보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는 아주 적지만 한국과 북한과 관련한 얘기도 나온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북한 정권은 크메르루주의 사이코패스와 같은 행동을 따라 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모델로 삼은 것처럼 보였다. 이 모두는 미국이 북한의 국경에 가하고 있는 심각한 군사적 위협 때문이기도 했고 (이 때문에 북한은 모든 것을 국가 방위에 집중하고 있었다), 최고 지도자 김일성의 과대망상적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북한과 비교하면 중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차라리 느슨하고 자유롭게 보일 정도였다."(481쪽)

한국과 관련한 내용은 북한보다 길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이 있다.

"타이완, 한국, 홍콩(여전히 중국령),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지역들로, 소비 수준과 생활 수준 전반이 향상되어 일본이나 서구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의 정치체제는 말레이시아만이 부분적으로 예외이고, 사실상 모두 독재였다." (408쪽)

 

한국과 북한이 제3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엿볼 수 있다. 이런 책을 읽는 장점은 자신을 상대화하는 힘을 얻는 것이라고 본다. 북한은 북한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자신이 당대에서 가장 알맞은 길을 걸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제3자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겸허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도자는 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 '공산전체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제3자도 그렇게 볼 수 있도록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데올로기가 뭔지 명쾌한 해답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서로 상반하는 듯한 이데올로기가 어떤 때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가지면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실에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마디로 '이데올로기,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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