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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Dec 04. 2023

'전향', 더욱 깊이 들여다보기

후지타 쇼죠, 배신, 배반, 군사독재, 마루야마

후지타 쇼조(1927~2003)는, 일본에서 '학문의 천황'이라고 불리는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 학파를 대표하는 좌파 계열 사상가다. 하지만 마루야마 학파를 대표하는 학자이면서도 마루야마가 근무했던 도쿄대의 교수로 남지 못하고 밀려났다. 그는 숨질 때까지 호세이대(법정대)에서 교수(명예교수) 생활을 했다.


후지타는 마루야마의 이론을 축소재생산하면서 마루야마에게 충실했던 또 다른 마루야마 학파에게 밀려 도쿄대를 떠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마루야마가 지금껏 중요하게 읽히고 있는 것은 후지타를 비롯해 '쫓겨난 마루야마 학파'의 덕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학창 시절엔 마루야마 마사오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졸업 뒤 일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비로소 그의 이름을 듣고 책을 몇 권 읽었다.


마루야마의 사상은 거칠게 말하면, 전쟁 시기에 시민 계층에 기반하지 않은 일본의 초국가 세력(절대주의 세력)이 아무런 견제 없이 전쟁으로 폭주하면서 망국을 초래했다면서 시민 계층의 창출을 일본 정치의 과제로 제시했다. 후지타는 마루야마가 놓친 부분, 즉  농본주의 등 일본의 전통적 요소를 더해 그 특유의 일본적 근대국가 이론을 구축했다. 이런 점이 좁은 시야로 마루야마를 추종하는 주류 마루야마 학파의 불만을 샀다고 한다.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논형, 후지타 쇼조 지음, 최종길 옮김, 2007년 12월)는 후지타 쇼조가 전향을 주제로 쓴 책이다. 앞서 마루야마와 관계를 약간 장황하게 쓴 것은, 저자의 성향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지타는 1950년대에 쓰루미 슌스케가 주도한 사상의 과학 연구회의 '전향 연구 집단'에 참여해, 전향 연구를 주도했다. 전향 연구 집단은 연구 결과를 집약한 <공동연구 전향> 상, 중, 하를 냈다. 지금도 이 책들이 일본에서 전향을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자료로 꼽힌다.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는 후지타가 <공동연구 전향>에 썼던 글을 모아 펴낸 것이다.


후지타에 따르면, 1920년대에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전향'이라는 말은 지금처럼 배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무법칙적인  운동에서 법칙적인 운동을 향해 법칙적으로 전화하려는 능동적인 행동이 '전향'"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뜻의 전향이 1930년대 만주 침략, 중일전쟁 때 국가권력(일본의 지배체제)에 의해 역이용 당했다. 심지어 일본 지배체제는 전향을 치안유지법보다 훨씬 우수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공산주의자를 천황주의자로 전향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 보면, 전향을 한마디로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향이라고 해서 모두 배신, 배반이라고 매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전향을 '날카롭게' 평가할 점이 있다고, 후지타는 말한다. 전향의 종류만 해도 전향, 비전향, 위장 전향, 표면적 전향, 실질적 비전향 등이 있으므로, 외부에서 일면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전향을 인정하지 않는 폭압의 시대에 어떤 사람이 겉으로는 전향서를 썼지만 내면적으로는 비전향의 자세, 활동을 한 경우가 많다.


저자는 전향을 크게 전전의 전향과 전후의 전향으로 구분한다. 전전 전향의 전형이 국가권력의 강제와 향도 아래 반국가주의에서 국가주의로 이행하는 것이라면, 전후 전향은 개인의 선택이 크게 영향을 줬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전전의 전향 현상에 대한 책임은 전향한 개인보다는 국가권력에 더 있다. 반대로 전후의 전향은 상대적으로 '자유'였던 만큼 개인의 사상 책임은 전전과 비교해서 훨씬 크다. 그것이 '성장'이든 '퇴보'든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3장과 보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쇼와 8년의 전향 상황(1933)>, 2장은 <쇼와 15년의 전향 상황(1940)>, 3장은 <쇼와 20, 27년의 전향 상황(1945, 1952)>을 다뤘다. 보론(<공동연구 전향> 중·하권 총평에 대한 보주)은 앞의 3장에 썼던 내용을 추후에 반성하는 내용이다.


전향 연구를 총괄 주도했던 지식인  쓰루미 슌스케는 전향을 '권력에 의해 강제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상의 변화'로 정의했다. 그리고 ① 만주사변 이후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력 발동에 의해 1933년을 정점으로 해서 일어난 '급진주의자'의 집단 전향, ② 1937년 중일전쟁 개시 뒤 1940년 신체제 운동에서 정점을 이룬 시기에 '주로 자유주의자에게' 가해진 강제력에 의한 전향, ③ 1945년 8월 15일을 정점으로 '패전에 의한 권력 이동에 따라 새로운 방향을 가지는 강제력의 발동'에 의해 '주로 반동주의자에게' 일어난 전향, ④ 전후 역코스의 개시에 의해 1952년 '피의 노동절' 탄압 직후에 정점에 달한 '급진주의자'의 전향으로 나눈다. 네 가지 전향 중 ①과 ④가 '자각적인 예각의 전향'이고, ②와 ③이 '무자각적인 둔각의 전향'이라고 말했다.


이런 쓰루미의 분류 및 설명과 비교하면서 후지타의 전향론을 읽으면, 일본에서 전향이 시대별로 어떤 변화와 특징이 있는지 더욱 잘 파악할 수 있다.


일본에서 처음 나온 개념인 전향은, 한국에서도 군사독재정권 때뿐 아니라 지금도 이따끔 '뜨거운 화제'로 등장한다. 이 책에 나오는 기준을 적용하자면, 군사정권 때는 국가권력의 강제력에 의한 전향이 많았고, 민주화 이후에는 개인의 책임이 큰 자발적 전향이 대세를 이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해방 이후 친일파가 대거 친미파로 바뀐 것은, 패전 뒤 전전의 천황주의자가 친미주의자로 자연스럽게 전향하는 일본의 흐름과 닮았다.


후지타의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전향의 사상사'를 다룬 책이 등장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지금 한창 쓰고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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