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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Feb 05. 2024

일본의 최고 외교 전략가가 보는 국제 정세

보이지 않는 전쟁, 다나카 히토시,  코로나, 다극화

다나카 히토시는 일본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전략가다. 2005년 외무성의 3인자라고 할 수 있는 외무심의관(정무 담당)을 끝으로 관직을 떠났다. 지금은 일본 종합연구소 이사장(부설 국제 전략 문제 연구소 이사장 겸임)과 일본 국제 교류센터 시니어 펠로로 있으면서, 일본의 국제 전략에 관해 활발한 발신을 하고 있다.

한국에 근무한 적은 없으나 한반도 및 한국과 관련한 일에도 깊게 관여한 바 있다. 북한의 파트너 '미스터 엑스'(나중에 유경으로 알려짐)와 비밀 협상을 통해, 2002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과 평양 선언을 성사시킨 주역으로 유명하다.

다나카는 미국이 9.11 동시다발 테러 사건 이후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칭하며 압박하는 긴박한 정세를 활용해, 과거사와 핵·미사일, 납치 문제를 포괄적으로 풀려는 대북한 독자 외교를 추진했다. 언제 미국으로부터 공격당할지 모르는 북한의 불안감을 활용한 대담한 시도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의 극적인 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의 일본인 납치 사실 인정과 평양 선언의 합의를 끌어냄으로써, 다나카의 이런 시도는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일본 국내에서 납치 문제에 대한 강한 역풍이 불면서 평양 선언은 한낱 종잇장 신세로 전락했고, 다나카도 곤궁한 처지에 몰리게 됐다. 납치 문제에 대한 초강경 파인 아베 신조 당시 관방부장관이 이때부터 승승장구를 했다면, 다나카는 입지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다나카가 정년까지 채우지 못하고 외무성을 떠난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조기 퇴직과 연구자로서 민간 활동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환영할 만하다. 그의 활발한 기고와 강연 등을 통해 일본 외교의 방향과 전략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중공신서라크레, 다나카 히토시 지음, 2019년 11월)은 외무성을 퇴직한 뒤 그가 쓴 책들 가운데 최신작이다. 이념 대립의 시대가 지나고 급속한 정보기술의 발달과 세계화의 진전으로 안갯속에서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세상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살핀 책이다. 2016년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책을 쓴 계기가 됐다. 

아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미사일 공격으로 촉발된 이-팔 사태 이후에 책을 썼다면 책 제목을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 전쟁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을 크게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트럼프가 내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유익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서문과 종장(일본의 전략과 미래) 외에 4장의 본문으로 돼 있다. 1장은 일본, 2장 미국, 3장 중국, 4장 한반도를 다루고 있다. 이 중 한반도가 전체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분량이 가장 많다. 일본 외교에서 한반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다나카의 생각이 반영된 구성이다.

1장에서는 일본의 정치가 소선구제와 '미숙한 정권 교대'로 열화 하면서, 외교도 중장기적인 전략이 아니라 당대 정권의 이해관계에 복속하고 있는 점을 한탄한다. 그는 일본 외교가 포퓰리즘에 휘둘리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면서 프로페셔널리즘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장에서는 미국에서 트럼프 정권이 탄생한 것은 미국 사회가 이념적으로 경제적으로 분단된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며, 국제사회의 경찰로서 미국이 역할이 점차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특징 때문에 미국 외교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이고 이에 적극 대비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 점은 제2기 트럼프 탄생에 대비할 때도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3장 중국에서는 2010년 경제 규모에서 일본을 추월한 중국의 존재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고,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서방과 대립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국제사회에서 주도권을 쥐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으로서는 미국과 안전보장을 강화하면서 중국과 상호의존관계를 심화하는 노력을 펼칠 것을 주문했다.

4장 한반도 부분은 한국과 북한으로 나눠 다뤘다. 한국에서는 역사 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는 다른 일본 주류 논객의 시각과 달리 한국 쪽의 역사 문제와 관련한 생각을 일본 잘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 배경을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을 이해하는 열쇳말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한', 즉 중국·일본 등 주위의 강대국으로부터 항상 침략 당하면서 생긴 한국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그가 한국이 일본에 요구하는 역사 반성을 '한'이란 감성적인 단어로 치환하는 그의 시각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북한과 관련해서는, 역시 그가 주도한 고이즈미 방북과 평양선언 얘기를 장황하게 풀어놨다. 그는 난제인 북핵 문제 해법으로 초계기 이름을 본떠 P3C를 제시했다. 외교적, 평화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대전제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경제적 제재(Pressure), 국가 간 연대·조정(Coordination), 위기관리계획(Contingency Planning), 대화 통로(Communication Channel)를 조합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인식하고 일본도 적극 관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국내에서 비등한 납치 문제 해결도 핵과 미사일, 과거사와 국교정상화라는 묶음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의 관여를 강조했는데, 6자 회담에 일본이 좌석을 확보한 것을 일본 외교의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주요 외교 대상인 각국을 일별한 뒤 마지막 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에 대한 일본의 대처 방안을 그가 애용하는 영어 약자, ICBM으로 제시했다. 그는 "(외교) 프로페셔널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4가지를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해왔다"면서 'ICBM 전략론'을 꺼냈다. 정보(Intelligence), 확신(Conviction), 큰 그림( Big Picture), 힘(Might)가 그것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지 우수한 인재가 아니라 까칠한 인재, 전례를 따르지 않고 고립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강한 인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바로 포퓰리즘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고 큰 눈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해 묵묵하게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프로페셔널이, 그가 제시하는 이 시대의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인재상은 일본에만 해당하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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