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재생을 위한 플랜B>
오사카총영사 임기를 두 달 정도 남긴 2021년 3월 말, 일본의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 선생이 운영하는 합기도관 '카이후칸'에 강연 초청을 받았다. 우치다 선생은 일본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이다. 도쿄대 불문학과 출신으로 프랑스 철학(레비나스 철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일본의 거의 모든 문제에 관해 저술과 강연, 기고 등을 통해 활발한 언론활동을 하고 있다.
카이후칸은 우치다 선생이 사는 고베시의 집과 일체형으로 지어진 합기도장이다. 합기도 사범이기도 한 우치다 선생이 합기도를 가르치는 도장이면서, 지역 주민들이 모여 강의도 듣고 공연도 관람하며 교류하는 공동체 마당이기도 하다.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민들에게 '오사카 총영사의 경험과 한일관계'에 관해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갔다. 2시간여의 강연과 대담이 끝난 뒤엔 재일동포 요리연구가인 나승자씨가 만든 한국음식을 먹으며 저녁 늦게까지 즐거운 교류 시간을 가졌다.
이때 만난 사람 중의 한 명이 <일본재생을 위한 플랜B, 의료경제학에 의한 소득배증계획>(집영사신서, 2021년 3월)의 저자인 유병광 박사다. 유 박사는 '의료경제학'을 전공한 재일동포 3세 의사다. 출판된 지 얼마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책을 그 자리에서 받았다.
유 박사는 특이한 경력의 인물이다. 오사카에서 조그만 병원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소학교까지 오사카에서 자랐지만, 중고등학교 6년은 가고시마, 의과대학 6년은 삿포로에서 다니는 등 일본의 남북 극단에서 생활을 경험했다. 그리고 오사카의 아버지 병원에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의료경제학'을 만나게 됐다. 작은 병원을 손해를 보지 않고 운영하기 위해 의료정책에 흥미를 갖게 됐고, 이런 흥미가 경제수법을 활용해 의사의 수가와 약가를 설정하는 '의료경제학'을 전공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에서는 의료경제학을 가르치는 곳이 없어, 무작정 하버드대학에 원서를 접수했는데 '운 좋게' 입학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1995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존스홉킨스대, 스탠포드대에서 최신 의료경제학을 배운 뒤 2020년 일본에 돌아올 때까지 연구와 강의 활동을 하면서 25년 동안 미국생활을 했다. 이 책은 그가 2011년 동일본대진 이후 일본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 아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쓴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플랜A'를 미국 및 다른 선진국의 성공사례, 특히 정보통신산업, 바이오산업, 금융공학을 이용하는 금융산업을 보방하는 일본의 재생정책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이 가지고 있는 '인재 부족' '경쟁 부족' '국가주권 부족'의 '3 부족' 때문에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구체적인 경제지표를 제시하면서 일본이 당면한 상황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일본 싯가 총액 기준으로 1989년에 세계 최상위 10대 기업 가운데 4개를 차지했던 일본 금융 기업 수가 2019년에는 100대 기업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거나, 구매력 기준으로 본 국내총생산에서 예전의 세계 3위권에서 점차 큰 폭으로 추락하고 있는 점을 거론하면서, 일본 엘리트가 추구하는 플랜A 전략이 허황되며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플랜B'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1) 예방의료교육에 관련한 직업 및 고용을 창출할 것, 2) 고용은 영리기업이 아니라 지방이주 촉진의 일환으로서 지방자치정부 내지 지방의 비영리민가단체가 제공할 것, 3)일본, 한국, 대만을 포함한 동북아시아경제공동체를 창설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개념적으로 플랜B를 플랜A와 플랜C를 연결하는 다리로 본다. 세계 전체가 이행해갈 지속가능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플랜C로 부른다면, 플랜B는 단기적으로 플랜A를 위한 전제조건을 정비하고, 중장기적으로 플랜A의 실패를 보완하며, 장기적으로는 풀랜C를 키워내는 데 공헌하는 것으로 위치 지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플랜A의 성공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보면서, 지방자치단체와 비영리단체와 손을 잡고 의료와 복지 사업을 중심으로 한 고용과 부를 창출하는 것이 일본을 재생하는 최선의 방안(플랜B)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세계가 문화나 인종, 종교 중심의 지역 블럭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같은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등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 일본, 대만 등이 동북아경제공동체를 만들어, 한 나라만의 약점인 '인재 부족, 경쟁 부족, 국가주권 부족'의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동북아경제공동체의 장점으로, 1) 국제화 흐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2) 가까운 시일 안에 높은 확률로 일어날 자연재해와 팬데믹,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수 있고, 3) 개별 국가의 통치시스템의 열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을 든다.
그가 플랜B의 재생방안에서 중시하는 활동의 하나가 인문사회과학 및 문화예술의 힘을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예방의료 부분에서 연극을 적극 활용할 것을 적극 제안하고 있다. 그는 일반 사람들이 흡연, 당뇨 등의 문제를 깨닫고 치유하는 방편으로, 상황극을 통해 서로 문제를 깨우치는 아우구스트 보아르의 연극 이론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데 주목하고 직접 실험도 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더욱 널리 알리고 보급하기 위해, '북동아출판'을 직접 만들어 <'플랜B'를 더욱 잘 알기 위한 10통의 편지>라는 안내 책을 내기도 했다.
유 박사와는 책을 받은 뒤 몇 차례 이메일을 통해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재일동포 3세이지만, 한국말은 거의 하지 못하고 일본어와 영어는 능통하다. 나와 이메일을 할 때는 한국사람끼리 일본어로 소통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굳이 영어로 소통할 것을 고집하는 '민족주의자' 같은 면도 있었다.
일본 재생을 위한 플랜B는 그가 태어나고 앞으로 살아갈 나라(일본)를 생각해 제안한 방안이지만, 내가 보기엔 한국에도 바로 응용할 수 있는 구상이라고 본다. 한국도 일본과 약간의 시차는 있겠지만, 비슷한 문제에 부딪힐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나는 그에게 '언젠가 한국에도 당신의 방안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나도 고국에서 그런 기회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책을 읽고 얘기를 들으면서, 그의 일본을 위한 플랜B는 '한국을 위한 플랜B'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