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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ug 05. 2024

서평 : 미국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책

<모든 제국은 몰락한다-미국의 붕괴>, 미국 엘리트, 파이어 경제

미국은 어떤 존재인가?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가장 잘 사는 나라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의 나라이고, 또 어떤 사람에겐 선악과 시비를 가리는 기준을 제공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든 나쁜 면보다 좋은 구석이 많은 모범국이자 강대국이라는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도 미국에 관해 그런 인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감히 미국을 "핵무기로 무장하고 권력투쟁에 빠진 후진국"이라고 대놓고 폄하하다니. <모든 제국은 몰락한다-미국의 붕괴>(진지, 안드레이 마르티아노프 지음, 서경주 옮김, 2024년 5월)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과 인상을 뒤집어엎는 미국 비판서다. 비판서라고 하기엔 너무 점잖다. 내가 이제까지 읽어 본 책 중에서 가장 신랄하게 미국을 난타한 책이다.


그렇다고 없는 사실을 끌어대며 험담하는 게 아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설득력 있게 비판한다. 그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내가 너무 미국에 대해 몰랐고 심지어 미국을 변호하는 사람들에 세뇌되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의 저자 안드레이 마르티아노프는 한때 소련의 일부였던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군사 문제 전문가다. 키로프 해군적기사관학교를 나와 1990년까지 소비에트 해안경비대 장교로 근무하다가 1990대 중반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현재는 블로그에 군사 문제 등에 관한 글 등을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 


굳이 저자의 배경을 자세히 밝힌 것은, 그의 이런 배경이 미국 비판에 적격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부 사정은 다른 과부가 가장 잘 안다는 말이 있듯이, 제국의 사정은 망한 제국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그가 가장 잘 알지 않을까 하는 하는 생각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이 있다.


"소련의 붕괴와 뒤이은 경제적 파국에서 러시아인은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미국이 바로 지금 겪고 있는 국력을 상실하는 치욕적 뒷맛을 보았다. 시쳇말로 러시아인은 제대로 당했다. 러시아 국민은 전 세계 다른 나라 국민과는 달리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그런 징후들을 경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도 없지만 러시아인은 그것을 아주 잘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비극이다. 미국의 위기는 조직적이다. 게다가 미국의 엘리트들은 세련되지 못했고 형편없는 교육을 받았으며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이 선전해온 것에 도취해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329~330 쪽)


한때 냉전 시대를 양분하며 호령했던 제국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미국과 소련을 동격으로 취급할 수 있느냐는 반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사정은 그와 경쟁 관계에 있는 하이닉스가 가장 잘 아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리라.


이 책은 모두 9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제목을 훑어보면, 소비, 부자병, 지리경제학, 에너지, 제조업, 서구 엘리트, 군비경쟁 패배자, 자국민도 지배하는 만인지상의 제국, 죽느냐 사느냐 하는 등의 어구들이 쭉 이어진다. 


미국에서 먹을 것을 걱정하는 인구가 엄청나게 늘고, 주택 문제로 대도시에 노숙자들이 들끓는 사정이 통계와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제시되는 것을 보면서, 그가 주장하는 겉만 화려한 선진국의 허상을 확인할 수 있다. 1인당 GDP가 8만 달러가 넘지만, 빈부 격차와 양극화의 심화로 나타난 현상이다. 이것이 바로 소련이 망하기 전 굶주린 사람들이 살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던 비참한 광경과 흡사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미국의 고질병으로 생산과 근면 성실한 노동에 기반하지 않은 경제, 즉 FIRE(금융 Finance, 보험 Insurance, 부동산 Real  Estate) 경제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파이어 경제 탓에 제조업이 폄훼되고 서비스업은 거품처럼 부풀려지는데,  이것이 미국이 쇠락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다.


즉, 파이어 경제에서 일확천금을 좇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에 청년 세대들은 제조업 분야 취직을 꺼리고 부모들도 자식들이 제조업에 종사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 결과는 민간항공기 제작 등 극히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제조업이 공동화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155밀리미터 포탄을 자체 생산하기 어려운 형편이라 한국에서 빌려 제공할 수밖에 없는 사정에서 이런 문제를 잘 엿볼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엄하게 비판하는 것은 미국을 이끌어 가는 엘리트의 위선과 무능, 지적 타락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명백하고 실재하는 위험과는 별도로 미국의 국격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미국 엘리트들을 꼽았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엘리트 그룹은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라는 예외주의와 우월주의에만 함몰된 채 변화하는 현실을 무시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엘리트들이 세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세력 균형을 평가할 교육도 받지 못했고 기초적인 소양도 쌓지 못했다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사뮤엘 헌팅턴 같은 학자와 외교관, 그리고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미디어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결과로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소말리아,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이란 등 수많은 국지적 분쟁과 내란에 개입했지만 제대로 성과를 거둔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전쟁은 유용한 목적을 성취했을 때만 유용하다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에 비추어 평가하자면, 미국은 모든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단언한다. 


미국은 더 이상 초강대국이 아니다. 물론 미국은 아직도 세계 여기저기서 외국 정치인들을 협박할 수 있다. 미국은 후진국을 협박하기 위해 몇 개의 항모전단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팻 뷰캐넌이 최근에 말했듯이 시간이 갈수록 “아무도 미국을 무서워하지 않는다.”(329 쪽)


저자는 미국 지식 풍토를 지배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파생물인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경험적 증거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신념 체계가 미국을 회복 불능의 실패로 이끌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런 문제의식은 "의식 과잉에 개성 없고 교양 없는 미국 상류층은 광대역 통신망으로 증폭된 광고만 있으면 진정한 재능이 없어도 인정하고 그것이 없으면 진정한 재능도 알아주지 않는다"라는 말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의 미국 비판은 윤석열 정권이 이끄는 한국 상황과 겹치는 부분도 많다. 책 속에 나오는 자유주의에 대한 혹독한 비판은,  마치 윤 대통령이 말끝마다 강조하는 자유주의의 허상을 폭로하기 위해 쓴 문장 같다.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사회 전체는 오늘날 현대 자유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가져온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 <중략> 현재 자유주의, 특히 미국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옹호하는 자유주의는 편협하고 파시스트적인 독재주의이며 계몽주의 시대의 도래와 그로 인한 서구의 번영 이후 수 세기 동안 성취한 모든 긍정적인 것을 파괴하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이다."(323 쪽)


저자는 미국에는 '감정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연대'라는 의미의 국민은 존재하지 않고 미국의 대기업 등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위한 만들어진 '획일적이고 원자화된 단위의 인간들'이자 '몰개성적인 소비자들'만 존재한다면서, 미국인을 감정적으로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을 되찾지 않는 한 붕괴를 막을 수 없다고 불길한 전망을 내놨다.


그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미국 디스토피아'는 과장된 것일 수 있다. 극단적인 주장과 분석이라는 지적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강함과 풍요'로만 치장돼 있는 미국이 실질적으로 어떤 약점을 지니고 있는지, 이 책처럼 철저하게 비판한 책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점에 이 책의 매력이 있다.      

[출처] 서평 183 : 이보다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한 책은 없었다. <모든 제국은 몰락한다-미국의 붕괴>|작성자 오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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