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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14. 2024

<서평> 디지털화가 초래한 공론장의 위기

하버마스,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 저널리즘

지금 한국의 공론장은 어떤 상황에 있는가? 공론장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아니, 공론장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가?

윤석열 정권이 한국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을 '정권의 나팔수'로 변질시키고, 준공영 방송이었던 <와이티엔(YTN)>을 건설업자에게 팔아치우고, <교통방송(TBS)>을 고사시키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공론장은 현재 죽기 직전의 질식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민영으로 시작한 <에스비에스>와 종편 방송들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한때 주요한 공론장의 역할을 해왔던 신문들도 성향에 관계없이 사영화·파당화의 첨병으로 전락했다. 이들은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 사주 및 자본의 이익,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지켜주는 경비견 노릇을 주임무로 삼은 지 오래다. 

다양한 시민들이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며 공동의 가치를 찾아가는 공론장의 축소와 소멸은, 곧 민주주의의 축소와 소멸을 뜻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공론장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공론장의 위기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닌 모양이다. 60여 년 전에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란 책을 펴낸 바 있는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가 다시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세창출판사, 위르겐 하버마스 지음, 한승완 옮김, 2024년 2월)을 펴낸 것을 보니 말이다.  

하버마스는 비판철학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를 대표하는 학자다. 1929년 생으로 지금 나이가 95살이다. 노학자가 참지 못하고 새로운 책을 들고나온 것은 디지털화가 초래한 공론장의 새로운 위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책은 주로 디지털이 어떻게 공론장에 위협을 주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하버마스가 1961년 펴낸 <공론장의 구조변동>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교 수 자격 논문인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18~19세기 영국·프랑스·독일에서 ‘부르주아 공론장’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동하는지를 살핀 뒤, 당시 서구 민주주의의 위기가 공론장의 형해화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그의 공론장에 관한 생각은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첫 책을 출간할 때는, 보편성·공개성·공공성을 특징으로 하며 서구 민주주의가 안정적인 지배질서로 정착하는 데 공헌한 공론장이 20세기 들어 퇴색하면서 공론장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서구 근대가 국가와 사회의 분리에서 시작했는데 이런 분리 흐름이 멈추거나 역행하면서 공론장의 주체도 '정치적을 적극적인 공중'에서 '개인주의적인 공중'으로, '문화 비평적인 공중'에서 '문화 소비적인 공중'으로 전락하면서 이런 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1960년 말에 활발하게 벌어진 신사회운동과 함께 변한다. 그는 1990년 출판한 이 책의 재판에서 자신의 초기 이론을 수정했다. 전후 서구 자유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공론장이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살아 있고, 시민 주체의 저항 능력도 작동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공론장에 관한 생각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변했다.

그리고 공론장의 재판 발행으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나온 이번 책에서, 그는 다시 공론장이 파괴되고 있다는 원래의 부정적인 입장으로 회귀했다. 물론 이유는 다르다. 그때는 국가와 사회가 분리에서 통합 쪽으로 거꾸로 돌아간 데서 원인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디지털화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는 새 책에서 "디지털화된 의사소통의 기술적 진보는 처음에는 경계를 허무는 경향을 촉진하지만 공론장의 파편화 경향도 촉진한다"라고 말했다. 또 "소셜 미디어의 배타적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반공적, 파편적, 자기 순환적 의사소통의 방식이 관철되어 정치적 공론장 자체에 대한 인식을 변형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추정이 맞는다면, 점점 더 많은 국가 시민에게서 토의적 의견 및 의사 형성의 다소간 토의적 양식을 위한 중요한 주관적 전제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라고 우려했다.

즉, 디지털화한 공론장이 포용성·보편성 진실 추구라는 공론장의 원칙을 잃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반쪽짜리 공론장으로 전락하면서 새로운 위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화된 의사소통이 급속하게 공론장을 오염·파괴시키면서 포퓰리즘이 창궐할 환경이 조성됐고 토의 민주주의(숙의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얘기다. 단적인 예가, 2016년 가짜 뉴스, 포스트-트루스 민주주의의 풍토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한 일이다.

물론 디지털화와 소셜미디어가 가져온 공론장의 변화만이 민주주의의 위기와 포퓰리즘의 발흥을 불러왔다고 볼 수 없다. 자본주의의 지구화,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의 발전, 양극화, 국제 이민의 가속화 등의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론장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서구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해온 하버마스의 시도가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다. 

하버마스는 반쪽짜리로 전락한 디지털 공론장과 민주주의 위기의 해결책으로 토의 민주주의를 제시한다. 그는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의견을 경청하지 않다고 느끼는 데서 오며, 토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이라는 토의적 이상이 사람들 사이에서 믿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현실화시키는 주역은 학자가 아니다.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 시민들의 몫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이 책은 128쪽으로 비교적 얇다. 그러나 개념이 어렵고 문장이 복잡해, 읽기 쉽지 않은 게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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