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4일 일요일, 일본 주요 전국지의 하나인 <마이니치신문>에 '재일동포 정치범'으로 사형수였던 이철씨의 기사가 머리기사로 나왔다. 3면까지 이어지며 관련 기사가 실렸다. 한 사람의 이야기, 그것도 재일한국인의 이야기가 일본 전국지의 1면 머리와 3면 전체를 장식하는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가 최근 펴낸 옥중기 <장동일기(長東日誌)>(동방출판, 2021년 6월) 출간을 계기로 나온 기사다. 나는 오사카총영사로 있으면서 이쿠노에 살고 있는 이철 재일한국양심수동호회 회장이 곧 옥중기를 내고 6월 26일에 출판기념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6월 2일 임기가 끝났다. 출판기념회 때까지 있었으면 참석해 축하도 하고 책도 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몇 차례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던 사이여서 더욱 서운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지인이 내 몫의 책까지 샀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 올 때 가져올 생각이었으나 코로나가 풀릴 조짐이 보이지 않자, 10월 초에 국제우편으로 책을 보내왔다.
마침 마이니치에 이씨와 관련한 기사가 대서특필된 것을 계기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기사를 먼저 보면 김이 빠질 것 같아 프린트해 보관해 놓고, 책장부터 펼쳐들었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은 재일동포 유학생을 '사냥'해 간첩조작 사건을 주기적으로 생산해왔다. 38선이 존재하지 않는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에 대북 경계심이 느슨하고 국내사정에 어두운 그들은, 대북 경계심을 고취해 정권 유지하려는 독재정권의 좋은 먹이감이었다. 이철씨는 70명이 넘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 희생자의 대표적 존재다. 그는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강화하던 1975년 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갖은 고문 끝에 '간첩'이 됐고, 1977년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가 민단에서 활동한 반공주의자였고, 그가 북에 가 간첩교육을 받았다는 기간에 일본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영수증 등이 있는데도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만 봐도 그가 조작극의 희생양임을 알 수 있다.
그는 13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7년 뒤인 1995년부터 1년 간 옥중기를 썼다. 혹시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될 경우 어린 자녀들이 부모가 살아온 가혹한 인생을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억이 선명할 때 기록을 남기겠다는 각오로 직장을 오가는 전차 안에서 옥중생활을 기록했다. 부인 민향숙씨도 그의 활동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년6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이렇게 쓴 글이 대학 노트 7권 분량이 됐지만 출판은 생각도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2015년 재심 무죄 판결과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계기로 출판을 결심했다.
2019년 6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재일동포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국가를 대표해 사죄하는 자리에는 나도 있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주요국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오사카에 와, 동포들과 간담회를 했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 인사말에서 재일동포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죄를 했다. 국가원수로서 첫 공식 사죄이다. 나도 이런 내용이 인사말에 담긴 것을 알고 깜짝 놀랐으니, 한때 사형수로 매일 생사의 기로에서 불면의 밤을 보냈던 이씨가 느꼈을 감정은 어떠했겠는가.
이씨가 감옥에서 마태복음을 우연히 만나 가톡릭 신자가 되는 이야기, 무기감형 소식을 전하러 온 간수들에게 불려나가면서 사형집행이 될 것으로 알고 마음을 다스리는 이야기, 매일 밤 방 점검을 한다는 이유로 사형수인 그의 방을 불쑥 찾아와 불안감을 가중시킨 악질 간수 이야기, 진정한 한국인이 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 약혼자 민향숙씨와 그의 어머니 조만조씨가 국내 운동권 및 일본인들과 연대해 이씨를 비롯한 재일동포 정치범 석방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읽는 사람의 오감을 여러 각도에서 사정없이 자극한다.
책 내용 중에서도 그가 대구교도소에서 주도한 `7.31 옥중 집단 단식투쟁'(1985년)을 다룬 제5장 '파란의 시대 1'과, 비전향 장기수들만 가두고 있던 대전교도소 특별사동을 다룬 제4장 '대전교도소 제6사'가 압권이다. 두 장의 분량이 책의 3분 1을 훌쩍 넘는 것만 봐도 그가 두 장에 큰 힘을 기울였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제5장은 '좌익 사범의 시베리아'라고 할 수 있는 대구교도소에서 이씨의 주도 아래 좌익수들이 엄청난 폭행을 뚫고 옥중 투쟁을 승리로 이끈 내용을 담고 있다. 이씨는 "나는 이 '대구 7.31사건'의 중심에 있던 사람으로서 이 투쟁에 참가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이것은 나의 옥중 투쟁사에서 가장 큰 봉우리일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 뒤 남은 감옥생활을 전투적으로 살게 됐다."고 평가했다.제 4장은 대전교도소 특별사동에서 만난 장기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림 그리듯이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또 옥중에서 만난 이영희, 신영복, 서승씨 등 유명인들과 조우한 얘기들도 눈길을 끈다. 신영복씨는 대전교도소 서화반에서 만났는데, 그때의 일화가 책의 제목으로 이어졌다. 화장실 하나밖에 없어 오래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신씨가 이씨에게 나는 단똥(짧은 용변)이니까 장똥(긴 용변)인 당신이 양보하라고 하면서 장똥이라는 말을 썼고, 이것이 이씨의 호 '장동(長東)이 됐다는 것이다. 장동은 긴 동쪽 나라, 즉 일본이란 뜻이라고 이씨는 풀이했다.
이씨는 책의 마지막 아버지의 입버릇이 "아버지를 팔아 번 돈으로 친구를 사라"는 것이었는데, 어쩌다보니까 출처불명의 아버지 말을 잘 따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프린트해 둔 마이니치 기사를 봤더니, "재일동포 정치범 전원 무죄"라는 또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진하겠다는 그의 각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참고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을 총체적으로 기록한 <조국이 버린 사람들>(서해문집, 2015, 김효순 저)과 함께 읽으면, 이철씨가 처한 당시 상황을 더욱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