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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Nov 04. 2021

재일동포 출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한가야씨 별세

'재일동포  음악의 대부' 한재숙씨 딸

오늘 오사카의 지인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비보를 들었다. 재일동포 2세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한가야씨(62)가 지난 10월 24일 독일에서 암으로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국내에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는지 보도가 젼혀 없었다.


오사카총영사로 있으면서 한가야씨와 수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부모님이 나라현 이코마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독일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도 방학 등을 이용해 가끔 오사카를 들렸다. 부임 첫해인 2018년에 이곳 언론인 단체인 저널리즘연구회가 주최한 작은 콘서트에 참석해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본 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때는 인사는 나누지 않고 연주 구경만 했다. 그리고 그 뒤에 그와 그의 딸, 그리고 그의 부모와 함께 두세 번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재일동포 음악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한재숙(1932-)씨다. 제주 출신으로 성악가와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재일동포 음악인을 많이 길러낸 '재일동포 음악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다.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깊이 간직한 그는 일본에서 4.3을 비롯한 민족의 아픔과 정서를 담은 많은 곡을 만들었고, 일본 안에서 민족음악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재숙씨의 딸이 바로 한가야씨다. 한씨는 일본과 한국뿐 아니라 유럽에서 널리 알려지고 활약한 피아니스트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 잘 알 것이기 때문에 그의 구체적인 경력과 업적은 생략한다. 최근엔 다름슈타트국제현대음악 하기강습회 상임강사(1998-2006)와 독일 갈스루헤 국립음대 교수(1999~)를 지내면서 유럽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그를 최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귀임 얼마 전인 2021년 4월 초다. 그가 주도해 개최한 '한재숙 선생 미수 축하 콘서트'가 3월 19일 히가시오사카에서 열렸다. 제자들이 모여 한재숙씨의 88살을 기념하는 콘서트를 열었고, 나도 한가야씨의 초대를 받고 참석했다. 한가야씨가 그 답례로 부모를 모시고 함께 점심을 대접했다. 그때만 해도 너무 건강해 보였다. 전혀 병자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고 소식을 듣고 돌아보니, 그가 코로나 감염사태 속에서도 아버지의 미수 기념 콘서트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은 것이 자신의 몸상태를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날 한가야씨의 딸, 한애나(23)씨도 신 들린 듯이 진도북춤을 추며 청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4.3사건을 피해 일본에 건너와 재일동포 민족음악을 개척한 한재숙씨,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이어받아 민족혼을 담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활약한 한가야씨,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이어받아 음악인의 길을 걷는 한애나씨 3대의 생애를 보면서, 앞으로 상당 기간 한가야, 애나 2대가 '해외의 민족음악'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늘이 너무 가혹한 것 같다. 한창 원숙미를 자랑하고 있는 한가야씨를 데려가다니. 하늘도 천재를 시기하는 것 같다. 그의 부모와 딸을 생각하니 무어라 할 말이 없다. 한가야씨, 부디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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