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와 쇠고기>, 강명관, 조선, 지배층, 삼법사
노비와 쇠고기.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지금이야 상하귀천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쇠고기라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설과 명절, 생일이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조선시대의 노비와 쇠고기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노비와 쇠고기-성균관과 반촌의 조선사>(푸른역사, 강명관 지음, 2023년 2월)란 책을 처음 봤을 때 든 의문이었다.
책을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무릎을 치게 된다. '아하! 이게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하면서 말이다. 이런 깨달음은 전적으로 저자의 덕이다. 저자인 강명관 씨는 한문학을 전공한 전직 한문학 교수(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역임)다. 지금까지도 준수한 한문 실력과 끈기 있는 자료 발굴 및 해독을 통해 조선 시대의 생활사에 관한 책을 꾸준히 써왔다. 이른바 한문을 바탕으로 한 조선 역사 전문 저술가다.
그가 이번에 노비와 쇠고기라는 낯선 조합의 열쇳말을 가지고 조선의 생활사, 아니 조선의 통치사를 깔끔하게 풀어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몇 가지 단어 뜻을 아는 게 필요하다. 반인과 반촌, 현방, 삼법사가 그것들이다. 반인은 사족 통치체제인 조선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던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속해 있는 노비다. 반촌은 반인들이 집단 거주하던 성균관 주변의 마을이다. 현방은 반인들이 소를 잡아 파는 가게다. 삼법사는 조선시대의 사법 기구인 형부, 사헌부, 한성부를 가리킨다.
저자가 이런 개념을 통해 해명하려는 구조는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는 성균관이라는 기관을 세우고 운영했지만, 그를 운영하는 데 충분한 돈을 지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균관은 그에 속해 있는 노비를 수탈해 운영과 운영비를 메꿨다. 그 과정에서 성균관 노비인 반인에게 특혜를 준 것이 소의 도축과 판매였다. 즉, 현방의 운영권을 준 것이다.
그런데 조선에서 소를 도축하고 쇠고기를 판매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불법이지만 반인에게만 특혜를 주는 대신, 법을 다스리는 삼법사에 벌금(속전)을 냈다. 사실상 벌금이라기보다 허가권인 셈이다.
반인들은 성균관에 부역을 하는 대신 쇠고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삼법사에 상납을 하는 구조로, 성균관과 삼법사의 기능이 유지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구조에 모순이 생긴다. 삼법사는 반인들에게서 더 많은 돈을 뜯어내려고 하고, 반인들은 되도록이면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려고 맞선다. 나중에는 궁방까지 반인을 수탈하는 쪽에 가담하면서 반인들의 불만은 더욱 커진다.
이렇게 물고 물리는 속에서도 성균관과 반인은 악어와 악어새와 같은 공존관계를 취한다. 성균관은 반인이 없으면 유지가 되지 않기 때문에 왕과 조정에 반인의 요구를 대변하며 반인이 유지 가능한 수준으로 수탈되도록 힘쓴다. 그래야 성균관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성균관도 넓은 범위에서는 수탈 세력이지만, 좁은 범위에서는 반인과 공생적 수탈 세력이다.
성균관의 이익 대변으로 반인들의 수탈이 가끔 약화되기도 하지만, 왕과 조정의 책임 회피와 무능력 때문에 조선 말기로 갈수록 수탈의 강도는 점차 강해진다. 이에 대해 반인들은 가만히 손만 놓고 있지 않았다. 철도(도축 중단)과 궐공(성균관 생도에 대한 식사 제공 거부)의 방법을 파업을 하면서 저항을 하기도 한다. 또 새로운 우시장을 세우거나 기름을 파는 우방전을 개설하고, 어름을 파는 빙전을 시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탈을 보전하려고 한다. 이를 보면, 정부가 정책을 내놓으면 사람들은 대책을 마련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조선시대 성균관을 지탱하는 세력이었던 반인들도 가만히 앉아서 수탈만 당하지 않고 대책을 세우고 맞대응을 했다. 하물며 지금 시대는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윤석열 정권이 카르텔 운운하며 건설 노동자 등을 압박하고 나섰지만 오히려 저항만 불러일으켰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계층 간, 계급 간, 이해관계자 간에 얽히고설켜 있는 모순을 합리적으로 풀지 않고 강압으로 해결하려고 하려면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인들의 저항만 봐도 알 수 있다.
700쪽이 넘은 저자의 두꺼운 책을 요약하면, '반인과 현방의 입장에서는 삼법사와 성균관으로부터 이중의 수탈을 당했고, 그것은 조선 사족 체제의 최고 교육기관과 경찰 기구가 반인과 현방의 수탈 위에 존립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다. 성균관의 운영 구조를 밝히는 말이지만, 더욱 확장하면 조선의 통치 구조를 꿰뚫는 혜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702쪽이지만, 책 뒤에 붙어 있는 주만 150쪽에 이른다. 그만큼 엄청난 양의 사료를 읽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곳곳에 마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화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