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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독일의 평범한 시민은 나치 등장에 왜 무력했나

나치, 히틀러, 전광훈, 손현보, 시민, 무력화

by 오태규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뒤, 1919년 당대에서 가장 선진적인 헌법을 가진 바이마르공화국이 탄생했다. 바이마르공화국은 10여 년을 버티지 못하고 파시스트 아돌프 히틀러의 수중에 떨어졌다.


바이마르공화국이 어떤 이유로 히틀러가 지배하는 파시즘 국가인 제3제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나? 그 이유는 100가지도 부족할 정도로 많다. 1차 대전 패배에 대한 왜곡된 집단기억, 주류 정치권의 실책, 경제 위기, 반세계화와 반민주 정서, 각 정치 진영 간의 갈등 등등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주로 당시의 지배세력이나 국내외적인 환경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반 시민의 시선이 결락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독일인 이야기-회상 1914~1933>(돌베개,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이유림 옮김, 2014년)은 바이마르공화국의 한 시민이 바이마르공화국이 어떻게 나치에 접수되어갔는가를 담담하게 서술한 책이다. 시민의 관점에서 본 바이마르공화국 몰락사이자 나치의 집권사다.


한 시민, 한 지식인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학자 김성칠(1913~1951)이 6.25 한국전쟁의 비극을 개인의 시점에서 관찰하고 쓴 책 <역사 앞에서>와 비슷하다.


필자인 하프너는 1차 대전 전인 1907년 독일 베를린에서 유복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원과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나치의 폭정이 극에 달하던 1938년 유대인 약혼자와 함께 영국으로 이주(망명?)했다.


이 책은 그가 초등학교 시절인 1914년에 터진 1차 세계대전 때부터 1933년 나치가 집권하기까지 일상을 기록한 것이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사후에 원고를 찾아 일부 유실한 부분까지 보완해 2001년에 출판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차 대전의 발발과 바이마르공화국의 실패, 히틀러의 부상과 몰락에 이르는 독일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놀라운 통찰력과 명료한 언어로 서술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다. 1차 대전 발발부터 히틀러 등장 직전까지를 다룬 프롤로그가 1부다. 2부 <혁명>은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의 정치, 사회 상황을 다룬다. 3부 작별은, 1933년 히틀러 시대에 좌절하고 고민하는 저자 개인의 얘기가 주를 이룬다.


저자는 이 책을 일종의 결투로 묘사한다. 엄청나게 힘이 세고 권력을 쥔 무자비한 국가와 작고 이름 없는 개인(저자)의 결투라는 것이다. 국가가 무시무시한 협박으로 개인에게 친구를 포기하고 연인과 헤어지고 신념을 포기하도록 강제하는 속에서, 개인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과정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 저자는 개인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떠난다.


나치는 집권 이후 '유대인 절멸'을 내세우며 선동과 백색 테러를 자행한다. 어용단체와 돌격대, 친위대가 폭력을 행사하지만, 시민들이 놀라기만 할 뿐 쉬쉬하고 못 본 척하고 지내는 사이에 세상은 점점 강한 나치의 손아귀 속으로 들어간다. 예를 들어, 정치적 성향이 다른 대여섯 명의 친구들이 격의 없이 사회 문제를 토론하던 스터디그룹에 저자도 속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둘이 나치당원이 되거나 친 나치적으로 변하면서 모임이 깨진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밀경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기면서 모임을 더 할 수 없게 됐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대목이 동료애, 공동체라는 이름의 마취제가 작동하는 부분이다.


"우리(사법시험 연수생)가 유터보그(집단훈련소)에 온 지 몇 주 만에 파리나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피의자에 대해 함부로 위험한 발언을 하는데 반박도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수준을 거기 맞출 만큼 생각 없고 경박한 대중이 됐다면 이는 동료애를 통해서다. 동료애에서는 어쩔 수 없이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정신적 수준에 기준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동료애는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략> 동료애 속에서는 사유가 번성하지 못하고 가장 원초적인 대중적 표상만 반영한다. 우리는 이 표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자신을 스스로 동료애라는 울타리 바깥에 세워야 한다."(348쪽)


나는 이 대목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나치는 반유대주의, 게르만 민족 공동체, 동료애 등을 집단 감정을 활용해 독일의 평범한 시민들을 세뇌시켰고, 시민들은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장서 나치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도 했다. 지금 한국에서 전광훈, 손현보 같은 극우 목사가 이끄는 교회 신자들의 비슷한 집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그 집단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고 급기야 해외로 탈출했다.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나 세력이 가장 나쁜 자들이지만, 역사는 그들이 협박하고 강요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용서하지 않는다.


광기 어린 집단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개인의 생각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물론 홀로 집단 광기에 맞서 개인을 지키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렇기에 연대가 필요한 게 아닐까?


윤석열이란 '유사 히틀러'가 부정선거와 방중 정서라는 바이러스를 살포하며 한국 사회를 광적인 분위기로 몰고 가려고 할 때 가장 큰 퇴치제는 '깨어 있는 개인과 그들 개인 간의 연대'다. 이 책은 히틀러 시대의 경험을 통해 그것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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