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 박구용, 철학, 촛불혁명, 이재명, 내란
2017년의 촛불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그 실패의 상징이 윤석열의 집권이다.
촛불 혁명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권은 집권 뒤 점차 촛불 시민과 멀어졌다. 멀어지는 대신 '적폐 청산'으로 촛불 시민의 허기를 달래 주려고 했다. 문 정권으로부터 적폐 청산 임무를 부여받은 윤석열 검찰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친윤 검찰'을 앞세워 권력을 찬탈하는 데 성공했다.
윤석열은 권력을 탈취하고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영구 집권을 꿈꿨다. 2024년 12월 3일, 군대를 동원해 내란을 획책했다. 수많은 시민의 피로 쟁취한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이 다시 1980년의 독재 정권 이전으로 회귀할 절체절명의 위기가 도래했다.
위기감을 느낀 민주 시민이 국회 앞으로 달려가 항거했고, 더불어민주당을 필두로 한 국회의원들이 신속하게 대처했다. 내란 친위 쿠데타에 동원된 군인들과 경찰들이 명령에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윤석열의 영구 집권 꿈은 무산됐다. 6.3 대선은 윤석열 내란에 대한 장례식이었다. 하지만 장례식이 끝났다고 내란 잔재까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시월, 박구용 지음, 2025년 1월 10일)은 철학자 박구용 교수(전남대 철학과)가, 철학으로 한국사의 대사건인 '빛의 혁명'을 해석하고 해명한 책이다.
박 교수는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 결의안이 통과되기 전에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이 나오기 전에 끝냈다. 혁명이 실패할 것이냐 성공할 것이냐가 결정되지도 않은 혼돈의 시기에 쓴 따끈따끈한 비판 철학서이자 실천 철학서다.
그가 이 책을 쓴 사연은 그의 실언 때문이었다. 그가 실언하지 않았다면 그는 책을 쓰지 않고 광장 어딘가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을 터였다. 실언이 이런 책을 낳은 것은 아이러니다. 저자 개인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실언이 없었다면 빛의 혁명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책을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보는 행운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나의 뼈저린 반성과 사과도 들어 있습니다. 혁명과 반혁명이 충돌하는 중대한 시점에서 나는 유튜브 방송에서 혁명의 아침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는 시민들에게 큰 잘못을 범했습니다. 나는 이 잘못을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서 내 잘못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에 대한 처방전도 제시하려고 합니다."(머리말, 22쪽)
그는 유튜브 방송에 나와 광장에 20대 30대 여성이 태반인데 남성들도 여성들을 본 받으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리고 성인지가 떨어지는 발언이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 뒤 반성 차원에서 광장에 나가지 않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글을 쓰다 보면, 어떤 때는 초읽기에 몰려 쓸 때 더욱 명료한 글이 탄생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은 머리말과 맺음말 외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윤석열 쿠데타와 이에 맞선 빛의 혁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 한국의 동학혁명, 삼일운동, 광주항쟁, 촛불혁명 등을 철학적으로 검토하며 해명·해석한다. 이런 검토 위에 12.3 윤석열 내란은 1980년 군사정권 시절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반혁명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 청산되지 않고 잠자고 있던 아주 오래된 악마가 출현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2부에서는, 윤석열이 집권한 뒤 여러 분야에서 해 온 악행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비판한다. 법치주의가 아닌 법률주의로 정치를 부패시키고, 입틀막으로 공론장을 파괴하고, 의대 정원 사태에서 보듯이 양적 공리주의로 사회 규범을 흔드는 만행을 폭로한다. 윤석열이 입에 달고 살았던 '자유'가 '늑대의 자유'일뿐이라는 점, 즉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허의 의식이라는 지적은 읽는 것만으로도 통렬하다.
3부에서는 빛의 혁명이 승리한 뒤 추구해야 할 길에 대한 제언이 주로 담겨 있다. 개헌의 필요성과 방향, 당원 중심 대중정당의 의미, 진실의 힘 등을 철학사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한국 사회의 주요 과제인 복지와 평화 구축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담겨 있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은 윤석열 파면이 매우 불투명한 때였다. 그런데도 책을 읽으면서 그런 점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저자가 사태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전망했기 때문이리라. 공부가 깊은 학자의 내공이 뿜뿜 느껴진다.
" '지금, 여기', 극도의 긴장이 지배합니다. 제5공화국으로 추락할 가능성과 제7공화국으로 비상할 가능성 사이의 긴장입니다. 헌법재판관들에게 우리 공동체의 운명이 맡겨져 있습니다. 나는 헌법재판관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재판관들은 대부분 법실증주의, 그것도 아주 낡은 법실증주의의 세례를 받고 성장했습니다. <중략> 그러나 이들이 존중하는 것에는 법조문 말고 다른 하나가 있습니다. 모든 실증주의가 그렇듯 법실증주의도 현실 권력을 긍정하고 추종합니다. 이 맥락에서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 각자의 위치에서 헌법재판관들에게 주권자 국민이 윤석열보다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내가 이 책을 쓴 까닭입니다.(맺음말 282쪽)
그의 말대로 주권자의 힘에 압도되어, 헌재는 4월 4일, 전원 일치로 내란 수괴 윤석열을 파면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주권자의 힘'을 실험하는 기득권 세력의 도전은 쉼 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 모두 박 교수의 말을 잊지 말고 빛의 혁명 완수를 위해 '주권자의 힘'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