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평 :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사회를 좋게 만든다.

<협력의 진화>, 팃포탯, 엘설로드, 진화생물학

by 오태규


세계에서 한국만큼 '승자 독식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곳은 없을 것이다. 승자는 환호하고 패자는 자학한다. 승자는 모든 걸 갖고 패자는 모든 걸 잃는다. 그러다 보니 승자가 되기 위해서 남을 짓밟는 것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풍조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사투를 벌여 승자만이 거금을 거머쥐는 게임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한국에서 나온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적자생존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다윈의 진화론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는 너무 자연스럽다. 다윈 진화론에서는 열등한 생물은 살아남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모든 생명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이런 경쟁에서 이긴 생명체만이 후세에 자손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생물계를 보면,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진화하는 경우가 꽤 있다. 생물학자들은 다윈 진화론의 이런 예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집단 선택설', '혈연 선택 이론'을 개발했다. 언뜻 보면 협력하는 것 같지만 집단이나 혈연, 더 나아가 디엔에이(DNA) 계승 차원에서 보면, 경쟁 또는 이기주의의 산물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이론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다. 도킨스는 개체는 다음 세대에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한시적 생존 기계에 지나지 않으며 자연 선택되는 것은 집단도 개체도 아니고 유전자라고 주장했다.



그래도 세상에는 집단 선택설로도, 혈연 선택 이론으로도, 이기적 유전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특별한 혈연관계가 아닌데도 이기심과 경쟁을 자제하고 호혜주의에 입각해 협력하는 예가 숱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1차 대전 때 참호전으로 대치하던 양쪽의 병사들이 식사 시간이나 교대 시간에 맞춰 교전을 자제한 것이다.



<협력의 진화>(마루벌,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이경식 옮김, 2024년 5월)는 호혜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이타주의가 자연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걸 처음 과학적으로 증명한 책이다. 이른바 '협력의 진화'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로버트 액설로드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정치학자다.



저자는 개인 또는 단체들이 어떻게 협력 관계를 창발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찾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게임이론가와 컴퓨터 과학자들을 초청해 토너먼트 대회를 열었다. 이때 러시아 태생의 미국 수학 심리학자 아나톨 라포포트가 제출한 팃포탯(Tit for Tat, 맞대응) 전략이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팃포탯 전략은 2차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협력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메커니즘으로 떠올랐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오태규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오태규의 브런치입니다. 한겨레신문에서 도쿄특파원과 논설위원실장 지냄. 관훈클럽 총무, 위안부 합의 검토TF 위원장, 오사카총영사를 역임. 1인 독립 저널리스트. 외교 평론가.

15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시사칼럼> 한국의 '심층 국가(Deep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