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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원 Jan 18. 2017

자신을 내려놔야 볼 수 있는 것들

긍정적인 사고

인간은 생각의 도구다.

생각에 조정되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관심 있는 일만 찾고 관심이 없는 것은 스쳐 지나간다. 직장에서 누가 얘기하지 않았음에도 혹시 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되고 눈 빗만으로도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뚜렷이 쳐다보는 것도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한다. 혹 뭐라 말이라도 건네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시선을 회피한다. 남의 시선이 좋기도 하지만 부담스럽다. 위 친하지 않은 상사가 보면 시선을 피하지만 밑의 부하 동료가 쳐다보면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직굽이 올라갈수록 더 그런 현상이 있다. 특히 직급이 높을수록 이런 경향을 자주 본다. 이제는 시선을 피하는 것이 오히려 편해진 것 같다. 나는 시선을 피하는 사람이니 나를 쳐다보지 마시오!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과의 시선 교환은 즐겁게 하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것에 있으며, 우리나라 문화에 아랫사람이 인사를 안 하면 어쩌지?, 나의 의견이 무시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에 시선을 회피한다. 그건 사회생활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도 그러는 것 같다. 눈을 마주치면 먼저 "안녕?", "하이~", "잘되니?", 날씨 좋죠?, 등 다양한 첫인사가 있다. 이것조차도 쉽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왜 시선을 피할까? 나의 자존감에 상처를 받을까 봐 시선을 피하게 된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저기가 생각하는 것만 이해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도착할 때 그곳에 살던 원주민인 인디언은 콜럼버스 배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큰 배를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배라는 인식도 못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만 인식한다. 경험해보고 생각해보지 못한 것은 전혀 생각조차 못하고 안된다고 한다. 우리의 사고는 이렇게 제한적인 삶에 물들어 있다. 풍요의 시대에 굶어 죽는 사람은 극소수로 누구나 쌀밥 먹으며 편히 생활 하지만 그래나 직장생활이 힘들고 삶이 힘들다고 한다. 남들만큼 벌지 못한다고 자존감이 낮아져 자신감마저 낮아져 있다.


우리는 그만큼 행복하다.

직장생활에 작은 급여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면 아르바이트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당신이나 그렇게 사시죠?라고 얘기할 수 있다. 나의 얘기 핵심은 우리가 처해있는 위치는 매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우선 자기의 만족이 우선 되어야 그다음 미래에 대해서 희망적으로 볼 수 있ㄷ 때문이다. 자신의 햔실에 불만이 많은 사람은 아무리 좋은 위치에 올라가도 불행할 뿐이다. 조금 식이라도 발전하고 성공한다면 작은 진화에 행복해하지 않은까? 한다. 이런 행복을 맞보면 걔속 그것을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이듯 자신의 현실을 우선 만족하고 행복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 행복해야 미래도 행복한 것이다.


자신의 불만은 사소한 불만이 너무 많다.

사사건건 짜증내고 불만 투성이면 주위에서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나?

의식을 긍정적으로 바뀌면 안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인디언이 콜럼비아호를 발견했더라면 운명은 조금 더 달라짖 않았을까?



비전이 있는 사람은 말은 적으며 행동은 많이 한다.
몽상가는 말은 많으나 행동은 적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기 내면의 확신에서 힘을 얻는다.

몽상가는 외부 환경에서 힘을 찾는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문제가 생겨도 계속 전진한다.
몽상가는 가는 길이 힘들면 그만둔다.

- 존 맥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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