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시돌 목장
아침에 일어나니 제주가 온통 설국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서울에서는 눈이 오면 걱정이 앞섰는데 제주에 오니 다시 동심이 살아났는지 빨리 밖으로 나가서 눈 덮인 제주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으로 들떴습니다.
'OH's 제주' 목록을 펼쳐서 오늘 같은 궂은날 가볍게 산책할 만한 장소를 선택했지요.
오늘의 코스는 천주교 사제인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P. J. Mcglinchey) 신부(후에 '임피제'라는 이름으로 귀화)가 1961년에 처음 만들었다는 '성이시돌 목장'입니다. 아일랜드에서 온 파란 눈의 신부는 평생을 제주에 헌신했다고 해요. 가난한 제주도민을 위해 황무지를 개척해 아시아 최대의 목장을 건설한 앙트레프레너이자 박애주의자입니다. 2018년 4월에 별이 된 임피제 신부님의 순결한 영혼을 느끼며 아무도 걷지 않은 눈 쌓인 하얀 길을 걸었습니다. 제 마음의 때가 벗겨져 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이른 아침 성이시돌 센터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웠어요. 그럼 '순백의 산책길' 함께 걸어보실까요?
하얀 길 위에 오직 나의 발자국만.... 참~ 똑바로 걸었죠?
오늘 찍은 사진 맞아요. 찬찬히 보면 잎사귀 위에 눈이 내려앉았쟎아요. 다음 사진에서 확실히 ~.
이거 봐요! 꽃 속에 흰 눈을 가득 머금고 있어요. 이 예쁜 모습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감동했는지~~ !
제주에 와서 동백꽃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홑동백이요. 잎은 두툼한 짙푸른 색에 붉은 꽃이 소담하게 피구요, 꽃이 질때는 꽃잎이 한잎 두잎 지는 게 아니라 꽃송이가 한번에 떨어지는데 주변이 조용하면 그 소리가 툭하니 들린다고 해요.
그리고 혹시 이 나무 아세요?
산방산, 검은 현무암, 제주의 전통문 정낭, 낮은 돌담과 더불어 제주에서 제가 사랑하는 이 '먼나무'.
서귀포에 자생하는 나무인데요. 잎을 모두 떨군 나뭇가지에 이렇게 선명하게 빨간 동그라미가 조롱조롱 매달려 있어요. 설원과 대비되는 빨간 열매... 우리 동네 안덕면 가로수는 이 예쁜 먼나무랍니다.
바람이 세서 모자와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었어요. 매일 입는 이 패딩도 절대 벗을 수 없어요. 제주 바람 아시쟎아요.
이곳은 '새미 은총의 동산'이라고 부릅니다. 성서 속의 중요한 장면들로 조각공원을 만들었어요. 근처에 새미 오름이 있어서 새미~
잎이 없을 때 나무의 자태가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뿌리에서부터 충만한 에너지가 잔가지 끝까지 쭈욱 올라가는 게 느껴져요. 참 잘 뻗어있는 나무입니다. 이런 나무를 안고 있으면 나무의 기운이 저에게도 전해질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 어떤 잎들이 돋아날까 궁금해요.
십자로 뚫린 공간 사이로 보이는 오름이 바로 '새미오름'
'새미 은총의 동산'을 돌아 나와서 조금 걷다 보면 '성이시돌 목장'이 나와요.
처음에는 임피제 신부님이 호주에서 면양과 종돈을 들여왔대요. 그래서 신부님 별명이 '푸른 눈의 돼지신부'님.
우유팩 속에 들어갔어요. 뒤에 보이는 기념품 샵 <우유부단>이 오픈하려면 한 시간 더 있어야 하는데 운영하시는 분이 일찍 나와서 가게 앞 눈을 쓸고 계시네요. 이시돌 우유는 마트에서 사 먹는 걸로..
테쉬폰(Cteshphon) 하우스, 여기가 바로 이시돌 목장의 핫스폿이에요.
2000년전 이라크 바그다드 테시폰 지역에서 유래한 건축양식이라는데 지금도 그곳에는 유사한 건축물들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곡선형으로 되어있는 쇠사슬 형태의 구조 덕분에 오랜 기간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온전히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데요. 테시폰 주택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이곳에만 남아있어 귀중한 사적입니다.
일곱 난쟁이들은 어디 가서 아직 안 오지? 나 배고픈데.... ㅎㅎ
배가 고파서 산책을 끝내고 아침 먹으러 집으러 갑니다. 공심 하려 했는데 공복이 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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