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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서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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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휘서 Nov 16. 2020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휘서님, 안녕하세요? 요일이 확정되었으니 원하는 모임명 정해서 모레까지 알려주세요."


"넵, 고맙습니다. 고민해 보고 알려드릴게요."



얼마 전 새 독서모임의 일정과 커리큘럼을 확정할 무렵 트레바리 크루에게서 알림톡이 왔다.


', 이름을 정해야 하는구나.'


수백 개의 독서모임이 있는 트레바리매 시즌 새로운 클럽을 개설한다. 초창기에는 클럽명 뒤에 숫자와 컬러 등을 붙여 구분했는데 모임이 대폭 늘어나면서 파트너(진행자)에게도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어떤 단어를 할까, 고민의 시간이 밀려왔다. 클럽의 정체성은 '씀에세이'로 정해져 있으니 뒤 단어는 붙이기 나름이다. 먼저 진행하고 있던 클럽은 '씀에세이-산책'이라 붙였다.


좋아하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나열해 본다.


'하늘, 바다, 사랑, 소망, 풀잎, 달빛, 사람..... 소담스럽다, 다채롭다, 은은하다.'


명사에서 형용사로 뻗어간다. 이제 클럽의 성격, 기억하기 좋은지를 가늠하며 하나씩 발음해 본다.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고 한 편의 에세이를 는 모임, 서로의 글을 읽어본 후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부분 등을 조언해 주는 시간을 떠올리며.  


리스트를 하나씩 대입하다 바다와 달빛이 남았다. 둘 다 발음하기 쉽고 예쁜 느낌이 들었다. 고민 끝에 최종 이름은 '씀에세이-달빛'으로 정했다.


'바다'란 단어가 자칫 막막하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다. 바다 앞에 섰을 때 탁 트이는 느낌을 좋아하지만 배를 타고 노를 저어 가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망망대해의 느낌도 든다. 에세이를 처음 쓰는 이들이 50%가 넘을 텐데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바다보다는 늘 한결같은 달빛이 낫지 않을까? 고요한 밤의 시간, 나를 마주하는 글쓰기를 떠올리니 마음이 달빛에 기운다.


10월 셋째 주 일요일 첫 모임. 글을 쓰고 싶은 다양한 얼굴이 모였고 뒤풀이에서 한 멤버가 이런 말을 전했다.

"클럽명 달빛이 참 예뻐요. 숫자가 들어간 클럽은 뭔가 삭막했거든요. 달빛을 떠올리면 달빛 아래 글을 쓰는 사람이 생각나서 잘 어울려요."


오, 그런 생각은 못했는데 이리 사람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다. 달빛을 좋아하고 고요한 밤의 시간이 떠올라서 붙였는데 이런 이미지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니 잔잔한 기쁨이 차올랐다.


단어는 보는 이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단어가 다르리라. 어떤 행위나 사물을 가리키는 의미가 좋아서, 발음이 예뻐서, 혹은 한글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어서 등등.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 사람과의 일화가 생각나듯 단어가 상기하는 행복한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이유는 다채롭다.


자연을 사랑하는 나는 좋아하는 단어 또한 자연을 향해 있다. 힘든 일이 일상을 가득 메워도 잠시 자연을 느끼며 걷는 시간에서 위안을 얻는다. 사계절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찰나 글과 색채의 영감이 떠오른다.


긍정적인 힘과 영감이 되는 단어를 꾸준히 들여 확장의 원천으로 삼아야겠다. 바다와 하늘, 초록. 이 단어들이 단지 글자에서 머무르지 않도록. 단 하루도 같지 않은 하늘의 빛깔, 바다가 품은 저마다의 풍경, 변화무쌍한 초록의 성장을 고이 담았다 나만의 언어로 내어 놓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온 단어 또한 숱한 언어의 바다에서 길어낸 나만의 진주가 될 테니. 수백 개의 독서모임 중 하나를 택해 4개월의 시간, 네 편의 글을 빚어 나가듯 말이다.


고르고 골라 정제한 단어가 유일무이한 정체성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달빛 아래 침잠해야겠다. 글자에서 행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주 발견하고 다듬어 가야지. 세상에 내어보일 수 있는 도기를 만드는 마음으로.


사람도 단어도, 그 이름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천착할 때 눈부시게 빛나리라.





* 오늘부터 '애서의 숲' 매거진을 연재합니다.

애서가 에디터이자 트레바리에서 15개의 독서모임을 진행한 파트너로서 책과 독서의 여정에서 발견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놓을게요. 따스한 관심과 애정 가져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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