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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서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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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휘서 Feb 06. 2021

책 읽기 방향을 수정하다



매년 한 해의 독서 목록을 기록하기 전에 목표를 겸한 제목을 붙인다. 올해는 '2021 찬찬히, 깊이 있게'라 붙였다.


지난 몇 년 간 참 열심히 책을 읽었다. 쉴 새 없이 꾸준히 들였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간 완독한 책이 333권. 발췌독, 자주 보는 책까지 합치면 500권쯤 되리라. 다독과 애서의 기간을 거치며 읽기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책을 보는 안목이 높아져 텍스트의 수준을 전보다 빨리 파악할 수 있게 된 점도 수확 중 하나. 좋아하는 문체와 작가의 취향이 여러 갈래로 나뉘며 좁아졌다. 여러모로 많은 것을 얻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제어를 거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많이 읽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다. 미친 듯이 책을 읽고 싶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 시절은 이미 지났다. 양적인 욕심은 없다. 다만 그때 열정을 되살리고 싶어 도서관이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왔을 . 양보다는 '지적 유희'를 위한 목적이 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음... 조금만 읽으면 100권이겠는데?' 하는 숫자를 향한 집착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타인의 독서 결산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유심히 살폈고 매달 읽은 책을 공개했다. 누군가의 목록에 호기심이 들 듯 '남들도 내 독서목록을 궁금해하겠지'라는 마음이었는데 점점 본질에서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몇 권 읽지 않은 달에는 초라한 기분까지 들었다. 좋아서 하는 독서였는데 어느새 남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리뷰에 공감하는 이웃도 있었지만 독서양으로 부러움을 표하거나 독서의 깊이를 판단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편치 않았다. 숫자는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판단하게끔 하는 장점이 있지만 본질을 가려 무엇이든 단순화시키는 맹점도 있다. 어느 시점부터 매달 읽은 독서 목록 대신 인상 깊었던 책만 공개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Photo by Hope House Press - Leather Diary Studio on Unsplash

읽은 책에다 숫자를 붙이던 메모 형식을 올해부터 그만하기로 했다. 나만 보는 기록이지만 읽은 책의 제목만 기록하련다. 책의 권수가 알고 싶으면 연말에 딱 한 번 세어보면 알 수 있는 일. 1년 동안 숫자에 메일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 은연중에 생기는 다독을 향한 집착을 걷어내면 내 안에도 여유가 생기리라. 폭식하듯 탐욕스러운 읽기를 지양하고 천천히 음미하는 독서를 들일 때이다.


드넓은 지(知)의 숲을 헤매는 대신
자주 들르는 나만의 정원을 만드는 일


독서의 방향성도 틀었다. 드넓은 지(知)의 숲을 헤매는 대신 자주 들르는 나만의 정원을 만드련다. 공들여 키울 화목을 골라야지. 특정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는 아니지만 애정 하는 분야를 탐구하는 마음으로 공부해 보고 싶다. 그간 자주 찾았던 에세이, 고전 소설 분야를 멀리하진 않겠지만 할애하는 비율을 줄일 것이다. 대신 나의 정체성, 커리어의 성장을 일구는 책에 더 정성을 쏟아야겠다. 문학적 영감을 주는 책, 미학 및 색채학을 우선순위로 정했다. 산발적으로 모은 책을 하나씩 통합해갈 것이고 꾸준히 좋은 책을 들일 예정이다.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책에게도 곁을 내어줄 테다. 요즘 관심 키워드는 '나무', '자연', '생태', '풍경', '산책'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출판시장에 식물을 다룬 에세이가 늘어서 반갑던 차. 유희와 힐링을 위한 매개체로 삼고 싶다.


메모 줄의 다짐대로 찬찬히 깊이 있는 독서로 나아간다면 일상의 자존감도 서서히 성장할 것이다. 내면이 성장하는 만큼 단단하고 성숙한 글도 따라오겠지. 독서가 빚어내는 최상의 선물을 스스로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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