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 휘서 Oct 30. 2022

명품을 팔기 시작했다

물건을 가치는 사용 빈도로 결정된다


소비 다이어트를 하며 ‘비움'을 병행했다. 옷 쇼핑부터 책, 모든 물건에 이르기까지 씀씀이를 기록하며 집 안의 물건을 더 자주 살폈다. 생각보다 물건이 많았고 쓰지 않고 자리만 자리하고 있는 짐도 많았다. 버릴 건 버리고 쓸 수 있는 건 나누거나 중고로 팔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명품도 여럿 있었다.


당시에는 반해서 샀지만 생각보다 쓰임이 적었던 물건들이다. 내 몸에 비해 너무 크고 무거워 실용성이 떨어지는 가방, 디자인에 혹해서 샀지만 일반 지갑보다 쓰임이 적어 사용하지 않게 된 카드지갑, 가방 장식용 참, 화려한 색이라 옷 매치가 어려웠던 스카프 등.


살 때는 이름 난 브랜드를 산다는 뿌듯함과 잘하고 다닐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옷장 속에만 박힌 신세가 되었다. 기존 옷과의 스타일링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결국 명품도 여느 브랜드와 다르지 않았다. 잘 산 제품은 가치를 발하고 잘못 산 제품은 아무리 명품이라도 무용지물이다. 누군가에게 주거나 팔거나 폐기될 운명. 물건의 말로는 태생과 관계없었다.


이들을 중고 마켓에 내놓기 시작했다. 가격은 여타 물건과 다르지 않았다. 최초의 가격보다 최소 30% 이상 저렴하게 내놓아야 하트라도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새것에 가까운 상품일수록 가격 방어선이 높았지만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않으면 1년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는 제품이 온라인상에 넘쳤다.


Photo by Andrej Lišakov on Unsplash


20만원 대에 샀던 E사의 스카프는 4개월 만에 팔렸다. 35% 할인된 가격이었고 택배비도 내쪽에서 지불했다. 4개월 만에 나타난 적극적인 구매자 앞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새 상품처럼 보이게 해 달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탁까지 들어주었다. 우체국에서 새 박스를 사서 주소까지 단정하게 붙여 보냈다. 두 번째로 팔린 제품은 G사의 카드 지갑. 일본에서 40만 원대에 구입하고 세 번 든, 새거나 다름없는 제품. 박스에 보증서까지 고스란히 보관했었다. 약 70% 할인된 가격인 15만 원에 당근했다. 나머지 제품은 여전히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


세월이 지날수록 명품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 제품은 극소수이다. 세월이 흘러도 브랜드 가치가 유지되거나 더 높아져야 하고, 한 브랜드 내에서도 몇몇 클래식 제품에만 겨우 해당한다. 오늘 사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는 C사의 클래식 백 또한 중고 마켓에서 산 당시의 가격대로 팔리지 않는다. 가격이 오르는 건 매장가뿐이다. 구매가보다 최소 10%~20% 이상 가격 다운을 했을 때 문의라도 받는다. 이미 누군가가 소유한 건 가치가 그 즉시 떨어진다.


최대 90% 이상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올리면서 깨달았다. 명품도 한낱 물건이고 가치는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최고의 가치는 자주 쓰는 것이고 모셔둔 제품은 고가의 장식품에 불과하다.

패션을 공부하며 일찍이 이 세계를 알았다. 남들보다 먼저 입문했고 디자인을 접하러 자주 매장에 갔다. 학교에서 접하는 브랜드는 모두 하이엔드 브랜드로 소위 명품이었다. 전공자로서 이런 디자인을 탄생시키는 하우스의 감각에 경외감을 느꼈고 자연히 이 브랜드들을 신봉했다. 제품 질도 최고일 거라는 환상을 품게 되었고 가격 또한 범접할 수 없는 신비를 더해 주었다.


그러나 어떤 제품은 원재료 대비 가격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기술력보다는 브랜드가 스스로 부여한 가치에 대중이 휘둘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물건이든 가치는 쓰는 사람이 정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후 패션 매거진에서 일하며 매달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를 접했다. 해가 갈수록 치솟는 가격을 보며 ' 제품이 과연 수백 만원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수천 만원을 기꺼이 투자할 만큼 구매자의 가치를 주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패션에  담은 이로서 디자이너와 하우스를 향한 존경심은 변함없지만 브랜드의 가치를 가격으로 올리려는 마케팅 수법과 이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는 갈수록 갸우뚱해진다. 스타일링에 충분히 활용 가능한 디자인 가치보다  브랜드를 들면  패션이 업그레이드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오늘도 중고 마켓에 넘치는, 쓰임을 다하지 못한 명품 리스트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든다.  많은 명품들은  이곳에 왔을까? 처음  때와  마음가짐이 달라졌을까? 구매 시의 설렘과 만족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진짜 명품은 특정 브랜드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스타일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멋스러운 아이템이면 각자에게 모두 명품이다. 어느 브랜드든, 설사 브랜드가 아니라도 상관이 . 그런 점에서 나의 명품은 명품이 아니었고 결국 후회의 리스트로 남았다. 신중한 소비를 일깨운 각성제이기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